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45편 ; 일두 고택 (함양 4)

푸른나귀 2023. 9. 25. 18:45

1. 들어가며

 

         남계서원에서 강을 건너 약 3km 떨어진 개평마을에는 중요민속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된 일두고택이 있다.

 경남지방의 대표적인 전통한옥으로 대지 3천여 평, 12동의 건물로 일두 정여창 선생이 세상을 뜬 뒤인 1570년 후손들에 의해 사대부가의 면모를 갖추어 건축되었으며, 1843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되었다고 한다.

 골목에서 행랑채 사이로 난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누마루가 붙어있는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는 마당에서 1.2m 정도 높이에 기단을 조성하고, 누마루를 높여 통풍과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다. 외부인이 안채로 들어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한 좁은 중문과 별채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도록 작은 홍예문을 설치한 것이 흥미롭다.

 유가(儒家)에서는 조상의 음덕을 받고자 사당과 가묘(假墓)를 집안에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가묘는 보이지 않고 사당은 문이 굳게 닫혀있어 아쉬웠다. 부지 조성시에 택지 내에 흐르는 음기(陰氣)가 강하여 양기(陽氣)를 보완하기 위해 한때 정원에 세웠던 남근석(男根石)을 누마루 아래 헛간에 방치되고 있었는데, 음란한 조각품이 아니라 음양학의 관점으로 비보학적인 것이기에 원래의 위치를 찾아 복원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성현으로 추앙받는 일두 선생의 후손들은 이곳에 정착해서 만석꾼이 되는 지주가 되었지만, 주민들에게 민심을 얻지 못하고 원망을 사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상을 욕보이게 한다는 속담이 이런 이유에서 나오는구나 하는 상념으로 집안을 둘러보고 누마루 앞 소나무 정원을 나오는데 대하소설 ‘토지’의 주인공인 서희가 금방이라도 나를 반길듯하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2. 참고자료

          @ 위치 ;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0-13

          @ 지정 ; 국가민속문화재 제186호

 

         * 함양 일두고택

             조선 오현 중의 한 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鄭汝昌, 1450~1504) 선생의 고택으로, 현재의 집은 그가 죽은 후 선조 무렵(1570년대)에 건축된 것이다. 

 10.000m2 정도의 넓은 집터에는 솟을대문, 행랑채, 사랑채, 안사랑채, 중문간채, 안채, 아래채, 광채, 사당 등의 여러채의 건물이 서 있어 양반 대가로서의 면모를 고루 갖춘 경남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솟을 대문에는 5개의 충신,효자의 정려패가 걸려 있어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본보기가 된다. 이 집은 공간구획 배치가 가장 최적화 되어 있고, 세간 살림살이들이 비교적 옛스러운 대로 제자리에 보존되고 있어서 당시의 생활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집앞 현장 안내판 발췌) 

 

   @ 일두고택의 솟을 대문. 대문에는 충효 정려편액이 걸린 홍살문이 덧붙여 있다. 

   @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문헌세가(文獻世家)'라는 현액 걸린 사랑채와 누마루가 함께 배치하였다.

   @ 안채로 들어서는 일각문의 문지방이 넘나들기 쉽도록 중앙 부분을 낮게 설치하였다. 

   @ 안채 토방과 마루, 그리고 안마당에 가을 햇볕이 가득하다.

   @ 안채에서 사당으로 들어가는 솟을 대문은 필요시에 개방하나 보다.

   @ 안사랑채에서 외부로 나가는 돌담 홍예문이 정겹다.

   @ 사랑채에 붙어있는 누각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은 '석가산' 정원

    @ 누각 아래 창고에 보관 중인 남근석(男根石)이 제 위치를 찾아 햇빛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일두고택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