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67편 ; 대천 산신당(1)

푸른나귀 2023. 2. 5. 10:27

1. 들어가며

 

 이제는 마을마다 지내던 당제나 산신제 같은 마을 공동체 행사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많은 요식과 격식이 생략되고 주민의 참여도도 떨어졌지만, 아직까지는 그 편린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대천초등학교 주변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주거지가 생기고, 그들의 천왕을 숭배하는 신사를 산 줄기에 세우고 우리 국민에게도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던 암울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오서산 줄기가 서해바다 쪽으로 흘러들어 봉황산이 되고, 봉황산 자락이 서남방향으로 펼처지며 대천 읍내를 품는 형국의 산세에 오래 전부터 지역민들이 모시던 산신당이 위치한다.  산신당이 세워진 것이 갑오년(1894) 부터라니 일제의 조선병합에 불안을 느낀 백성들이 민족정신 고취를 위한 방편과 마을의 단합을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제가 이곳 산신당 주변에 신사를 세운 뜻도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계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산신당은 블록조 벽체에 푸른색 시멘트 기와를 얹은 개략 가로 3.0m, 세로 2.0m 정도에 여닫이 쌍문에 창문은 없다. 좌우측과 후면의 벽에는 해와 학, 그리고 소나무와 산을 그린 벽화를 그려 신선이 사는 신계(神界)를 표현한 것 같다.

 산신당 앞 소나무에 매어놓은 당기(堂旗)를 보니 무오년 정월(戊午年 正月)에 제를 지내려고  만든 것이었다. 무오년은 1978년이니 45년 전에 당기를 새로 만든 것으로 추측이 되고, 당집은 원래 흙담집에 초가로 된 한 칸 집이었을텐데 경고문으로 미루어 보거나 시멘트 기와에 푸른 도색을 한 것으로 보아서 1990년 대에 재건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산신당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데에는 중앙시장이나 한내시장 등의 지역 상권이 유지되고 번창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져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산신당에서 시내쪽을 바라보면 시내 중심부를 관망할 수 있으며 멀리 왕대산과 간척지 평야가 훤하게 조망된다.

 산신당 바로 아래로 시내에서 죽정동 대우아파트 앞으로 뚫리는 터널이 공사중이다.

 터널이 뚫리고 차량이 오고가면, 여기에서 100년 넘게 대천 주민들의 치성으로 받들던 산신은 오서산 호랑이의 등에 올라 오가는 차량의 불빛만 세면서 수호신의 역활을 태만시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정월 보름이 다가오니 산신께 제에 진설하려는 제물들이 산신당 문 앞에 놓여있다.

 

 

 

2. 참고자료

 

    @ 위치 ; 보령시 대천동 138-107 

 

    @ 이곳 산신당은 100여 년전 갑오년부터 발원하여 주민의 발병 천재지병을 몰아내고 사농공상의 번창과 대천시장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수호신으로 해를 거르지 않고 매년 음력 1월 14일 시민 합심으로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니 서로 보호함에 혹여 홰손 파기하는 자는 타인이 보고 고발하여 당국으로 부터 처벌 받게 되오니 경고합니다. 

   1996년 8월 20일 산신당 수호관리 위원장 (현장 경고문 발췌)

 

   @ 봉황산 소나무 숲속 산신당 전경

   @ 산싱당 측면과 후면벽에 그려진 벽화

   @ 신선당 앞 소나무에 세워진 당기(堂旗)

 

   @ 산신당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 신선당 옆에 세워진 경고문의 문구가 눈에 거슬리게 한다. 위압감을 주는 경고문보다는 문화재로서의 안내문으로 순화된 글귀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