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오서산의 서측 사면 기슭에 산성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몇 번의 탐사 산행을 해보았지만 찾지를 못하였었다. 작년 초에도 성당골로 오서산에 오르면서 오서산 안내도에 표기된 '도독의 성' 주변 신암사 터 주위를 훓터보기도 하였는데 수목이 우거져 가늠하기 힘들기에 낙엽이 진 후에 다시 탐방하기로 하고 또 미루게 되었다.
지난 가을, 지인으로 부터 '도독의 성'이 던목고개에서 신암터를 경유하여 청라 명대계곡 월정사로 연결된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임도 아래쪽 밤나무 단지 끄트머리의 숲속을 유심히 찾아보면 있을거라는 말을 들었었다.
설 명절 차례를 지낸 다음날, 성연소류지에 차를 세우고 문수골로 들어가 임도에 도착하여 폭 넓게 넙티재를 향해 걸으면서 밤나무 단지를 찾기로 했다. 낙엽이 떨어져 시야를 확보 하기에는 유리 하였으나 산바람은 차가웠다.
마침 오서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혹시나해서 오서산성의 흔적을 보았는지 물어보았다. 이 지역에 사는 산행인이라서 자주 오서산에 들렀지만 알지 못한다며 산성이 있다면 지형상 신암사 절터 대숲 주변에 있을거라는 말을 전한다. 임도 코스를 벗어나 신암터 분기점에서 다시 절터를 향해 오르면서 대나무 숲이 마치 성벽을 감추고 있는 듯하여 빽빽한 대나무 숲을 헤치고 들어가 보았지만 능선 경사면을 덮은 대나무의 울음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한 시간 정도를 절터 주변을 맴돌다가 되돌아 나와 성골쪽으로 난 임도로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도 못찾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면서 성골과 시루봉과의 분기점에 도착하고, 다시 시루봉쪽으로 방향을 잡아 가파른 임도를 걸었다. 어느해인가도 '도독의성' 의 위치가 안내도에 시루봉을 오르는 왼쪽으로 표기되어 있기에 임도 좌측 능선을 뒤지고 다녔었는데 헛탕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혹시나 그때 숲이 우거져 잘못된 능선을 잡았던 것이 아니었나하는 의아심이 들기에 다시 그 숲을 뒤져볼까 망설이다가 임도 아래쪽이라는 지인의 말이 기억되기에 시루봉 분기점까지 가 보았다. 그러나 밤나무 단지는 보이질 않는다.
분기점에서 허무함에 잠시 다리쉼을 하고, 청라쪽으로 몇 해전 새로 뚫린 임도를 따라 더 가보리라 생각하고는 커브길을 돌아서는 순간, 넓은 면적을 벌목하고 수종변경 조림을 한 경사면이 보였다. 아마 작년 봄이나 가을에 시행을 한 듯하다.
임도 아래로 낙엽이 진 나무들 사이로 돌무더기가 수북한 형태가 보인다. 좀 더 돌아서니 성벽의 흔적이 숨은 듯 능선을 감싸 안으며 남쪽으로 뻗어 있다. 반가움에 급한 경사면을 구르는 듯 달려 내려갔다.
성벽의 완전한 형태는 높은 곳이 4~5m 정도이고, 길이는 대체로 50~70m 정도로 가늠이 되며, 외벽의 하단부 돌은 길이 1.2m 정도에 높이 30cm 정도의 직육면체의 거칠게 다듬은 돌이 사용되었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돌이 쓰였다. 아마 내부에는 자갈돌들과 흙으로 틈새를 다지며 산 능선이의 경사도를 따라 어슷하게 축성을 하고 상부에는 3~4m 정도의 폭으로 평편하게 터를 잡아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의 서쪽 아래로 향한 부분은 채 성벽을 완성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성벽의 기초부분(부자리)을 쌓다가 중지한 듯하고, 오랜세월이 지나서 성벽 하부는 붕긋하게 돌출되어 붕괴될 우려를 자아낸다.
작년에 '도독의 성'을 찾으려 아랫동네에 들렀을 때, 지나가던 할머니께 성의 위치를 여쭤보니 옛날 고사리 꺾으러 산속에 들어가면 돌담이 보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위치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다. 산나물 채취와 나뭇꾼이 사라진 한동안의 '도독의 성'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도 잊혀져버린 유물이었다.
그 깊은 숲속이 벌목으로 벗겨져 넙티고개를 지나가며 차창밖으로도 확연하게 얼굴을 드러낸 '도독의 성'을 어떻게 알리고 보존해야 할 것인지 고심하게 된다.
누가, 언제, 왜 이 성을 쌓았는지 확실한 정설은 없다지만, 전하는 이야기로는 백제 부흥군이 신라와 당에 대항하여 투쟁하였던 흔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1,400 년전 이 땅을 살아가던 민초들의 항쟁의 흔적인데, 현재 이땅을 살아가는 민초들이 너무 과소평가를 하여 푸대접을 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주변 홍성군 지자체에서는 장곡산성을 백제부흥군의 활동거점인 주류성이라 주장하고, 임존성과 함께 무한천을 따라가며 세워진 성벽들을 엮어서 탐방로를 만들어 교육의 장으로 보존하고 있다.
우리 지자체에서도 이러한 지역 유물들의 역사성을 중요시하여 지표조사와 학술발표를 통하여 그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과 유적을 널리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최소한 오서산에 오르는 입구에 세워진 안내도에 표기된 북절터(만장암), 신암터, 도독의 성 등의 위치를 정확하게 비정하고, 현장에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적인 이야기라도 기록한 안내판을 세워 타지에서 방문하는 등산객들에게 지역의 역사를 함께 알리고 바로 볼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답사로 임도와 시루봉 오르는 분기점에 '도독의 성'의 위치와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워주는 것이 필요하며, '도독의 성'이 오래도록 보전할 수 있도록 유지관리하여야 한다.
아울러 오서산에 상당골 어느 암자에서 금정찰방으로 내려왔던 다산 정약용이 하룻밤을 유하면서 지역 선비들과 시를 논하였던 흔적도 발굴하여 스토리텔링화하면 더욱 좋겠다.
보령땅에 존재하는 지금까지 알려진 성(城)을 참고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보령현과 남포현, 그리고 오천수군절도사영을 둘러싼 읍성과, 그 주위 산 능선에 축성한 산성들이 고려말과 조선초기 왜적의 침입에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서산 성의 축조시기가 백제 말이라면 통일신라 시대 건축된 성주사보다도 더 오래된 유적지라 할 수 있겠다. 삼국시대의 축성기법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 1. 진당산성 2. 보령읍성 3. 고남산성(보령리560 부근) 4. 오천수군절도사영 5. 아현산성 6. 대봉산성 7. 남포장성 8. 남포읍성 9. 달산리산성 10. 수부리산성 11. 대천리산성 12.성동리산성 13.창암리산성 14. 황률리산성 15. 삼곡리산성 16. 향천리산성 17.오서산성≫
2. 참고자료
@ 위치 ;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산 32-101
성연주차장(직, 0.5km, 19분) ▶ 성골(좌, 0.7km, 13분) ▶ 신암터 분기점(우, 0.8km, 13분) ▶ 시루봉 분기점(직, 0.2km, 5분) ▶ 오서산 '도독의 성'
@ 방문일시 ; 2023년 1월 23일 오후
@ 도독의 성(都督의 城)
서기 660년 이전에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똑같이 나누어져 있었으므로 이를 삼국시대(三國時代)라고 부른다.
그러나 서기 660년 백제 의자왕 20년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과 소정방(蘇定方)이 인솔한 당군이 도성에 처들어와서 의자왕은 항복을 하고 백제는 망하였다.
그해에 당나라는 백제의 옛땅에 오도독부(五都督部)를 두어 통치를 시작하였다. 이때 서기 661년 의자왕의 종제(從弟)이고 백제에서 좌평으로 있던 복신(福信)이 백제의 광복을 위하여 광복군을 조직하고 일본에 가 있던 의자왕의 왕자 풍(豊)에게 연락하여 일본 원군 오천 명을 데리고 신촌현 백사장(新村縣 白沙場)에 상륙하여 오서산에 들어가서 이곳에 산성을 쌓기 시작했으나 지세가 너무 험하여 완성을 못하고 이곳에만 조금 쌓았기 때문에 이곳을 '도독의 성'이라 하고 나머지는 부자리만 놓았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 도독(都督)이라 함은 백제성왕 2년(百濟聖王 二年)에 양고조(梁高祖)에게서 왕호(王號)를 받았는데 그때에 특절도독백제제군사수동장군백제왕(特節都督百濟諸軍事綏東將軍百濟王)의 왕호로 되어 있으므로 왕(王)을 도독(都督)이라 한다. (보령시 홈페이지 지명유래 참조)
@ 오서산 안내도에는 '도독의 성' 위치가 1번 등산로의 시루봉 올라가는 길 좌측으로 표시되어 있다.
@ 성당제 소류지에서 문수골로 발길을 잡아 올라가는 길.
@ 오서산 능선 서측 임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시루봉 등산로 분기점을 만난다. 이 분기점을 조금 지난 커브길 아래 도독의 성이 위치한다.
@ 청라 쪽으로 향하는 임도 아래 '도독의 성' 성벽과 잔해물이 넓게 퍼져있다.
@ 성벽을 쌓다가 중지된 듯 기단부(부자리)만 남아있는 구간
@ 성벽 위로 약간 평탄하게 조성된 성벽 상단부
@ 성벽 하단부가 일부 밀려나온 상태로 추후에 붕괴의 우려도 걱정이 된다.
@ 성벽의 높이는 높은 곳이 개략 4~5m쯤으로 길이는 약 50~70m쯤으로 측정이 된다.
@ 오랫동안 우거진 숲에 가리워져 세상의 이목을 받지 못하였는데 근간에 수종이식 벌목으로 넙티고개 언덕에서도 확연하게 그 자태를 보여준다.
@ '도독의 성' 전경
@ 청라 쪽으로 향하는 임도길에서 바라본 성벽
@ 시루봉 올라가는 등산로 분기점을 지난 커브에서 바라본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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