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53편 ; 무량사 김시습 부도(2)

푸른나귀 2022. 4. 29. 18:49

1. 들어가며

 

   나의 블로그 제16편 (설잠스님의 안식처(무량사), 2018.12.26)으로 오세신동 김시습의 부도에 대하여 설명한 적이 있다. 그 후로 두세번 더 다녀왔는데, 설명이 미흡한 것 같아 보충하고자 한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무량사가 있는 만수리에 볼 일이 생긴 겸에 선생의 부도를 다시 찾았다.

 가람의 배치에는 성스러운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탑의 수와, 부처님을 모신 금당의 배치를 보고 일탑일금당, 이탑일금당 등의 형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부처님을 모신 탑의 형태도 변화를 하게 되는데, 석가의 입적후 초기에는 둥그스름한 형태의 돔 모양(무덤 모양)으로 조성되다가 중국으로 불교가 전해지면서 전탑과 목조 탑으로 변하게 된다. 불교가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처음에는 목조탑이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삼국시대에 석탑으로 목조탑의 형상을 쫒아 축조하게 된다. 석탑을 보면, 기둥을 표현하고 출입문을 조각하는 등 목조탑의 그것과 같은 모양으로 처리되었다.

 

 부도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과 마찬가지로 저명한 스님들의 사리를 모시기 위한 봉분과도 같다.

 부도의 형태 또한 둥글고 길쭉한 항아리 모양의 것과 탑과 같은 모양으로 형성된 것이 있는데, 둥근 항아리 모양에서 탑의 형태로 변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도의 중앙부분 몸통 내부 사리함에 사리곽을 넣어 보관한다. 

 부도 탑의 형태는 최하부의 땅과 접하는 지댓돌, 그 위에 기단부의 좌대가 설치되고, 몸통과 지붕돌로 중간부를 형성하며, 지붕위로 받침돌이 있으며 그 위로 상륜부가 머리장식을 이루고 있어 석탑의 양식과 흡사하다.

 김시습선생의 부도의 좌대에는 코끼리 귀모양의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몸통은 육각으로 다듬어져 있다. 지붕위의 상륜부도 대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며 각 부분마다 안상과 구름문양이 새겨져 있다.

 

 주변에 다른 부도들도 다수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돋보이는 부도가 김시습의 부도이다.

 큰스님이 입적을 하게되면 그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와 부도를 가까운 거리에 같이 세우게 되는데, 매월당의 부도탑은 원래 탑비가 전해지지 않았었는지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탑비가 부도군락 입구에 세워져 있다. 

 이문구가 쓴 소설 ' 매월당 김시습'을 시간내어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2. 김시습 부도

 

       @ 위치 ;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125-11 (무진암 앞)

       @ 지정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25호

 

       부도는 덕이 높은 스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세운 탑으로, 승려의 묘탑(墓塔),혹은 승탑(僧塔)이라고도 한다. 무량사(無量寺)의 김시습 부도는 조선 전기 문인이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사리를 모신 것이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수양대군이 단종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왕위에 오르자 21세에 승려가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말년을 무량사에서 보냈다.

 일제 강점기에 부도 안에서 김시습의 사리를 넣은 사리기가 발견되었다. 현재 사리는 무량사에 모셨고, 사리기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부도는 조선 전기에 세워졌는데 조각이 화려하고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현장 안내판 발췌)

        

 

   @ 극락교를 건너 무진암으로 가는 길

   @ 무진암 앞 부도 군락

   @ 부도군락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김시습 부도

   @ 매월당 김시습 선생 비 전면

   @ 매월당 김시습 선생 비 후면

   @ 무량사 김시습 선생 부도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