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대천역에서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대해로를 따라 4.5km를 가면 좌측으로 남포면 제석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마을길을 천천히 달리다보면 좌 우측으로 장승들을 세워 놓아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듯 하다. 하지만 이곳도 도심의 물결이 스며드는지 주택의 형태가 농촌의 이미지를 벗고 현대적으로 변하여 가고 있는 듯 하다.
큰도로 마을 입구에서 약 1.2km 정도 들어오면 '경순왕 경모전 입구'라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그 농로길을 따라 약간 들어서면 스러져 가는 장승과 임도의 차단봉이 보인다. 시멘트 포장길의 경사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가려진 솟을 대문이 보인다.
나즈막한 돌담으로 둘러쳐진 경모전은 하단부 주차장에서 한참 올려다볼 수 있듯이 돌계단을 올라서 솟을 대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전면 삼칸, 측면 한칸의 처마 박공형태의 맛배지붕으로 사당이 위치하는데, 내부에는 세분의 위패가 모셔저 있다. 1987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솟을대문과 본청의 일부 기둥이 상하기는 하였어도 내부의 단청은 비교적 양호하게 보이는 것이 주민들에 의해 관리가 잘 되는가 보다.
보령에 와서 경순왕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 두 군데인 것을 근래에서야 알았다.
옥마산 산자락 남포면 창동리 산14-3에 위치한 '경순왕 영모전(敬順王 永慕殿)' 이 보령시 향토유적 제5호(2016.8.5)로 지정이 되어 관리(제61편; 옥마산 영모전 참조)되고 있는데, 같은면의 제석리에도 '경순왕 경모전(敬順王 敬慕殿)'이라는 추모 사당이 두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상하게 생각 하였다.
창동리의 영모전은 능기(陵旗)와 영사(靈祠)가 옥마산정의 서쪽 산록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설에 의하여 지금의 자리로 1980년대 경주김씨의 문중에서 옮겨 중수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한편, 제석리의 경모전은 300년 전 부터 주민들에 의해 경순왕의 위패와 왕기를 뒷산에 돌담을 쌓고 당집을 지어 경순왕이 신앙의 대상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중요성이 부각이 된다.
제석리 경모전 솟을대문에 걸려있는 액자 속에는 보령신문(2006년1월21일) "남포 경순왕 경모전의 문화재 지정 및 체계적 관리 필요"라는 가십이 걸려 있었다.
마을 주민의 소박한 소망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작은 사당이지만, 경순왕 경모전이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잇기 위해서는 마을 주민들의 관리로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기관에서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가 이루어지길 주민들은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 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어느 사당을 가더라고 솟을 대문에 커다란 자물통이 입을 앙 다물고 있는데 반해 이곳의 솟을 대문과 사당의 출입문은 삐긋히 열려 있었다. 아랫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 보아도 '경순왕 경모전(敬順王 敬慕殿)'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보기를 몇 번 해 보고서야 찾을 수 있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제석리 경모전은 1830년대에 큰 홍수가 있었는지 옥마산에 있던 경순왕 사당의 위패와 왕기, 제기를 담은 상자가 떠 내려와 제석리 앞바다로 흘러든 모양이다. 아마 옥마산 아래 창동리 뒷산 어디쯤인가 있던 사당에서 큰물에 의해 보관중이던 괘짝이 궁촌천을 지나 대천천으로 들어서 바닷가를 떠 다니거나, 아니면 현 남포저수지 부근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개천을 통해 제석리 앞바다로 흘러든 모양이다.
남포방조제가 설치되기 이전에는 제석리 앞 벌판이 갯뻘이었으니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겠다.
마을 주민들에 의해 수백년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져 대동단결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제향되었음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역사의 전통성으로 볼때 영모전에 못지않게 경모전의 중요성이 높다고 보며 보존의 가치성이 높다고 본다.
2. 호서옥마산김부대왕지기(湖西玉馬山金傅大王之旗)
* 위치 ; 보령시 남포면 제석리 산6
1830년대 지석굴 마을에 살던 김국서(金局西)의 꿈에 상자가 나타났고, 이튿날 바닷가 독살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밀물에 떠밀려 온 상자를 발견하여 집으로 가져왔다. 상자에는 경순왕의 위패, 왕기, 그릇이 들어 있었다. 이것을 자기집 사랑방에 모시고 정월 보름날 정성들여 제사를 올렸더니 집안이 윤택해졌다. 이에 주민들이 마을 공동으로 모시자고 하여 뒷산에 돌담을 쌓고 초가지붕을 얹은 당집을 지어 상자를 모시고 정월 초에 마을의 수호신으로 제향해 오다가 1987년 당시 보령군의 지원을 얻어 목조와가 맛배지붕으로 신축하여 모시게 되었고 2015년 11월 복원(보존처리)하고 왕기를 축소제작 게첨하였다. 기(旗)는 가로 2m, 세로 4m 이며 가로로 朝鮮國(조선국), 세로로 湖西玉馬山金傅大王之旗(호서옥마산김부대왕지기)라고 쓰여있다. (현장 안내판 참조)
@ 마을 경순왕 경모전 입구 표지석
@ 도로변 제석리 장승들
@ 경순왕 경모전 입구 진입로
@ 경순왕 경모전 입구 소나무 군락
@ 경순왕 경모전 솟을 대문
@ 경순왕 경모전 전면
@ 경모전 측면
@ 사당내 제단 위패
@사당 내부 전경
@ 솟을대문에 걸쳐진 애닲은 액자
@ 현장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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