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19편 ; 주산 주렴산 기미독립만세 기념비

푸른나귀 2021. 3. 22. 08:58

1. 들어가며

 

  주렴산을 올라보니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시기에 일제의 핍박에 떨쳐 일어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갈 즈음 서울에서 활동하던 지식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만세운동의 선두에 서서 불을 지폈었다.

 우리 고향에도 산봉우리에서 만세운동을 하였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성태산의 만세봉과 환산의 만세봉, 주렴산 국사봉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대부분 오일장이 서던 장날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에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추진 하였으나, 왜경들의 감시가 심하여 산꼭대기로 올라가 횃불을 들고 소리를 쳐 주민들의 호응을 얻고, 왜경들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식의 시위운동을 추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라의 국권을 빼앗기고 고종의 국장일을 기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거족적으로 전개 되었다. 주렴산의 독립만세 사건은 왜경들도 우리 백성들의 항거운동에 놀래는 큰 사건으로 보령에서는 규모가 크고, 유일하다고 보는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이다. 

   

 

2. 주렴산 기미독립만세 기념비

 

    ★ 위치 ; 주산면 증산리 산 65-1

    ★ 지정 ; 국가 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이 곳 주렴산 국수봉(국수봉)은 1919년 4월17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진원지이다.

  당시 주산면 증산리 출신으로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철원(이철원, 구명 이종연)은 서울에서 학생시위운동에 참여하다가 휴교령으로 서울에서의 활동이 불가능하자 고향 주산에 내려와 동지들을 모으고 만세 시위 준비를 한 후 주산 장날인 4월 16일 독립만세운동을 펼칠 계획을 세웠으나 사전 누설로 왜경들의 감시가 삼엄해져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대신 다음날 저녁인 4월 17일 밤에 동지 18의사들과 함께 이 곳 주렴산 국수봉에 올라 태극기를 꽂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18의사 대부분이 왜경에 체포 되었다. 4월 18일에도 주산면 야룡리 복개봉(복개봉)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계획 되었으나 실행에 옮길 수 없게 되자 박윤화(박윤화)가 홀로 복개봉에 올라가 태극기를 꽂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로 인해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독립지사들은 왜경에 체포되어 보령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후 보안법 위반혐의로 4월 20일 즉결처분에 의해 태형 60대~90대의 처벌을 받았다. 주렴산 만세운동을 주도한 18의사 중에 태형 기록이 남아있는 김양제(김양제), 박윤화(박윤화), 박태현(박태현), 이장규(이장규), 이철규(이철규), 임문호(임문호), 윤기호(윤기호), 이성규(이성규), 이홍규(이홍규) 등 현재 9분에게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대통령 표창)을 추서 하였다.

  그날의 숭고한 만세운동을 기념하고 항일 독립 정신을 후세에도 영구히 기리기 위하여 1997년 5월 주렴산기미독립만세운동 선양사업추진위원회에서 기념비를 세웠고, 2019년 다시 정비하게 되었다.

 ※ 이 지역 독립만세운동일과 관련하여 기념비, 사료 등에 나오는 3월 또는 4월로 기록된 것은 음력과 양력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장 안내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