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84편 ; 향토씨족 한산이씨 과암공 근린공원

푸른나귀 2020. 1. 27. 16:12

 

1. 들어가며

 

  이문구선생의 생가터를 방문하며 그가 대복이를 따라 휘젓고 다니면서 장난을 쳤다는 뒷동산 고갯길을 찾아보았다.길가에 너럭바위가 있어 장날 저녁이면 쇠미, 해창, 신대리에서 장을 보고 오던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에서 양잿물 장난을 하던 모습을 되뇌이기 위해서 뒷산쪽으로 발길을 하였다.

 소설 속의 과거로 들어가기 위해 책속에 나열된 글귀를 기억하면서 숲길을 들어서는데 제법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비록 너럭바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으나, 공원 한켠의 한산이씨 선산이 조성되어 있음을 알아보고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문구의 조부가 자는 긍우(肯宇), 호를 능하(陵河)라 했으며, 상주목사의 아들로 강릉부사의 손자로 태어 났으나 과거는 스스로 포기하였다고 하였다. 시절이 수상하여 벼슬자리는 못하였지만, 향토 양반으로서의 긍지는 대단하였다. 조부는 사액서원인 화암서원의 도유사이며 보령향교의 직원(直員)으로 활동을 하였으니, 어쩌면 개화시대와의 갈등 속에서 지조를 지키려 애를 쓰던 양반가로 아들의 사상과 갈등도 많았으리라.

 

 한산이씨는 고려말 가정 이곡 ,목은 이색 부자를 위시하여 서천에서 크게 발성한 가계이다.

 이색의 5세손인 이치가 보령지역 세가인 광산김씨 김극성의 누이에게 장가를 들어 보령에 정착을 하면서 토정 이지함과, 이지함의 장조카 아계 이산해를 배출하여 크게 가계를 세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 뭍힌 과암공도 한산이씨 가문의 보령지역 갈머리 출신으로 명성을 떨치고, 그의 후손들이 넓은 선산을 지역에 기부를 하여 도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2. 한산이씨 과암공(果庵公) 이무 묘비

 

        * 위치 ; 보령시 대천동 387-19임

           지정 ; 보령시 향토유적 제4호(2012.9.13)

 

   과암공 이무(李무, 1600~1684)의 자는 연지(延之),호는 과암(果庵)이다. 고려말 가정(稼亭), 목은(牧隱) 두 선생은 공의 10세, 9세조이다. 과암공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청빈한 삶으로 명성이 높았다. 묘비는 비석 받침, 비신, 갓머리를 갖춘 조선 후기의 형태이며 비문은 1790년대 공의 5세손 수하(秀夏)가 글을 지어 세웠는데, 공의 관직 이력 등 일대기를 기록하였다. 당상관 신분이었음에도 절제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현장 안내판 참조)

 

  이곳 대천 근린공원과 읍내리 공원 일부는 보령시 갈머리(관촌)에서 성장한 조선시대 명문거족, 한산이씨의 후손 이형복 선생이 고향인 보령시에 시민들의 안식처인 공원 조성을 위해 기증한 토지이다.

 이형복(李亨馥) 선생은 조선 선조 연간에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아溪 李山海)의 손자 과암 이무의 12대 종손으로 400여년 동안 문중의 장자에게 상속되어 오던 토지를 보령시에 기부함으로써 문중의 후손에게는 조상의 청빈했던 삶을 오늘날 되돌아 볼 수 있게 하였고, 보령시민에게는 도심 내 울창한 소나무 숲속 쉼터를 제공하여 전 시민의 모범이 되고 있다.

 12대조인 과암공 이무는 가정 이곡, 목은 이색의 10대, 9대손으로 1629년(인조7년) 문광에 급제하여 인조-숙종에 걸쳐 문신으로 활동하여 대사헌, 우참찬,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조선조에 할아버지 아계와 아버지 석루(石樓; 李慶全), 본인 과암의 3대가 기로소(耆老所; 조선시대에 70세가 넘는 정이품 이상의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구)에 든 것은 유명하다.

 또한, 한산이씨 과암공파(果庵公派)를 형성한 이무는 어려서 부터 총명하고 효성스러우며청빈한 관료로 생활 했음이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보령현편(保寧縣篇)」에 기록되어 있다. 묘소는 가장 좌측부터 1985년도에 이장한 과암 이무의 부인인 정경부인문화유씨와 과암의 아들 설루(雪樓, 李寅貧), 손자 소헌(蘇軒, 李孝根), 과암 본인의 순서로 병렬 배치하여 한자 내 천(川)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보령시는 과암공의 청빈한 삶을 상징하는 묘와 비석에 있는 조선중기 사대부가의 관직에 대한 기록이, 교육적 가치가 높고소박한 조형미를 지닌다고 평가하여 보령시 향토유적 제4호 『한산이씨 과암공 이무묘비』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이형복 선생은 2007년 가전(家傳)되던 『과암유고(果庵遺考)』를 비롯해 고도서, 서화류, 고문서, 교지 등 217점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기증하여 17세기 사회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를 제공 하였다. 이형복 선생의 고향사랑에 대한 높은 뜻과 선조로 부터 이어져 온 고귀한 선비정신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운다.

   2014년 6월 30일 보령시 (현장 공원부지 기증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