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80편 ; 웅천의 미륵모퉁이

푸른나귀 2020. 1. 4. 12:50


1. 들어가며


  웅천(熊川)이란 지명은 마을을 가로지나가는 웅천천에서 유래 된 지명이다. 대천(大川)이란 지명이 한내(큰 내)에서 유래 되었듯이  웅천(熊川) 또한 곰내라는 하천에서 유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말 꼼수▷곰수▷곰내▷웅천으로 전환 되었다고도 하는데, 꼼수는 숨어있는 냇가를 말하며 이것에서 '꼼'이 '곰'으로 순음화 되고 '곰'이 한자화 하여 웅(熊)으로 전환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옛말은 경음화나 격음화가 후세에 일어난 음운현상이어서 옳지 못한 학설이라고 하겠다. 웅(熊)이라는 지명이 각 도처에 산재하여 있듯이 '곰'이라는 순수한 우리지명 속에서 한자화 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변하였다는 논리가 적절하다고 본다.


 웅천 읍내에서 주산쪽으로 21번 국도를 따라 1km 정도 가다보면 좌측으로 웅천 석재 농공단지가 나오는데, 그 길 옆 철길 아래쪽으로 홀로 선 미륵불을 만날 수가 있다.

 대략 1.5m의 크기로 몸체보다 두상이 큰 형상으로 무덤 앞에 세우는 문인상과도 흡사하게 생겼다.

 문인상은 두손을 모아 홀(忽)을 잡는 형태를 이루고, 무인상은 한손에 몽둥이나 칼을 잡는 형태를 보이면서 얼굴이 험악한 서구인의 모습을 이루는데, 이 유물을 문인상으로 보기엔 어딘지 모르게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미륵불 신앙은 오래전 부터 전해오는 토속 신앙으로 볼 수 있는데, 미륵불은 석가모니 열반 후 56억 7천만년 후에 이 사바세계에 출현할 부처님으로 그때서야 이상향적인 안온한 세상이 이루워 진다고 하였는데, 이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고단한 삶에서 그가 오기를 염원하여 전설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몸체에 새겨진 옷자락과 꽃과 같은 앞 섭의 무늬를 보면 언제인지는 모르나 정을 쪼으던 장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얼굴 부분의 형체가 많이 손실 되어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남지 않아 그윽한 눈빛을 읽을 수 없고, 두툼하고 복스러운 귓볼의 형태도 읽을 수가 없다.

 예전부터 미륵의 코를 갉아서 마시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에 많은 미륵불의 코가 뭉퉁한 것을 보기도 하였으나, 이처럼 입 부분(혹은 눈구멍)이 깊게 움푹 패인 것이 이상스러웠다.

 찬찬히 둘러 보다가 몸체와 머리부분이 분리 되었었던 것인지 목부분에 접착한 흔적이 보였다.

 몸체와 두상의 비율이 비정상이라 두상부분이 따로 얹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접착 부분을 다시 확인하고, 석재의 재질을 확인 하여보니 빈틈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어느 시기엔가 몸체와 두상부분이 떨어져 분리되어 뒹굴다가 두상부분이 어느집 대문 문설주의 돌쩌귀(hinge,돌쩌귀;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서 여닫게 하기 위한 쇠붙이로 만든 암수 두 개로 된 한벌의 물건, 암짝은 문설주에, 수짝은 문짝에 박아서 맞춤)가 되어 한 동안 있었기에 구멍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아뭏튼 이 미륵불의 전설에 의하면 개경 벼슬길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파생 된 유물일 것 같다.

 신라 말 고려 초 이 땅에 미륵사상이 번창 했으니, 이 곳에 살던 민초들의 염원에 토속 장인의 혼혈의 정 쪼음으로 탄생 되었으리라 추측이 된다.

 


2.미륵모퉁이


   *위치 ;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산 67-2


  옛날 개경 살던 선비가 벼슬길을 마다하고 책 읽기에 열중 했는데, 비록 가난하였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아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혼란스럽고 위험하기도 한 벼슬길을 마다하고, 벼슬길 추천하는 이들을 피해 개경을 떠나 충청도 땅으로 봇짐을 싸아 아내와 함께 내포땅으로 내려왔다. 이곳에 자리 잡고 주민들을 보살피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마을사람들은 그를 따르기 시작 하였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개경에서는 그를 잡아 들이라는 포고문이 내려지고, 포졸들이 이곳까지 내려와 수색을 하자 선비는 가솔을 데리고 성주산 깊은 곳으로 옮겨 숨어서 살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 선비가 살던 집터에 갑자기 땅에서 미륵이 솟아 올라 후세 사람들이 그가 미륵이 되어 그 마을을 수호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미륵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워 지고, 병이 있는자는 병이 나았다고 한다.

 봉사는 미륵의 눈알을 후벼다가 약으로 마시면 눈이 뜨게 되어 지금의 미륵이 눈알이 없이 움푹 패이게 되었다고 전한다.( 보령시청 홈페이지-분야별 정보-관광,문화,체육-문화관광-관광도우미-보령의 문화-6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