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무창포에서 607번 지방국도를 따라 웅천쪽으로 가다 보면 이청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돌고개를 지나다 보면 도로변 우측으로 목장성(牧場城)의 안내판이 보인다. 잘록한 언덕받이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가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 토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우측 능선을 올라보면 과수원 주변으로 칡넝쿨에 뒤 덮인 야트막한 토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남포현조에 기록되어 있는 토진곶 목장성은 둘레가 16리 34보인데, 안의 토장(土場)이 8리 40보요, 석장(石場)이 7리 36보요, 목장이 1백 18보의 규모로 도랑물(渠水)과 띠풀과 고사리 풀이 있다고 하였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말(馬)은 군사력에 지대한 힘을 보태었기에 넓은 초지가 있고, 항만에 가까운 지역에 질 좋은 군마를 키우는 목장을 설치 하였는데, 대부분 섬이나 바다쪽으로 내민 육지의 곶(串)에 두었다.
이 토진곳 목장은 1427년에 폐장이 되었다가 세종 13년(1431)에 우목장(牛牧場)으로 잠시 운영 되다가 곧 폐장 되었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 토성의 흔적을 바로 찾을 수는 있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 인지 관리가 되지 않아서 인지 발길을 헤치며 들어가 보았지만 몇 걸음만에 돌아서야 했다.
성곽 중에 흔치 않은 목장 성곽이기에 주변을 정리하여 산책길이라도 만든다면 지나가는 행인들 중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역사의 장이 될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많은 군마들이 뛰어가는 말발굽 소리의 환청을 들을 수 있었다.
2. 목장성(牧場城)
* 위치 ;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산 65-7, 218 부근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세종 초까지 나라에서 말을 키우던 곳으로 당시 토진곶목장(土津串牧場)으로 불렸다. 목장은 황교, 소황, 독산, 죽청, 관당리 일원이었으며, 현 위치는 목장성의 한 부분이다. 장안마을에서 시작하여 황교리와 죽청리 산 능선을 거쳐 무창포까지 이어지는 약 11km 의 목장성은 석성과 토성으로 쌓았었고, 석성 흔적과 토성의 상당 부분이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장 안내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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