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79편 ; 노천리 석실분

푸른나귀 2020. 1. 4. 12:47


1. 들어가며


  이청삼거리에서 돌고개를 지나 607번 지방도로를 따라 서해고속도로를 지나치면 노천리 마을을 들어서기 전 좌측으로 낮은 산자락 아래 덤불 속으로 백제 고분이 숨어있다. 얼핏 지나치기 쉽지만, 눈 여겨 보면 조그만 표지판과 고분의 입구가 보인다.

 고분 앞을 지나가는 도로를 확장할 때에 경사면을 절개하다가 처녀분으로 발견되었기에 그 안에 수장 되었던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역사적 가치 있는 유물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내부를 살펴보니 후면의 석실벽은 큰 판돌과 작은 판돌을 바르게 쌓아 올리고, 좌우측의 석실 벽은 약간 경사지게 쌓고, 상부에는 넓은 판석을 얹어 대체로 마름모꼴의 형태로 석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바닥은 부정형의 판돌을 깔아 놓았는데 석실의 규모가 작아서인지 배수로를 낸 흔적이 없다. 발굴된 유적으로 보아 백제시대의 분묘인 것으로 확인이 되니 백제시대 이 지역에 살았던 토호족의 무덤일 것이다.

 웅천지역은 백제시대에 산천제를 지내며 호국영령을 모신 오합사(烏合寺, 현 성주사지)의 진입로로서 정치, 사회,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이 지역을 관장하던 토호세력의 힘도 도성의 왕족에 버금가듯 대단하였을 것으로 본다.

 어릴적에 고린장 또는 고려장이라고 불리던 무덤군의 입구를 들여다 보며 놀라 도망치던 마을 뒷산의 묘지들 또한 이러한 고분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2. 노천리 석실분 (백제분)


   * 위치 ;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406-3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도로 확장공사(웅천~황교)로 인한 구릉 절개지에서 발견 된 이 고분은 백제시대의 연도가 달린 횡혈식 석실분이다. 석실의 규모는 남북 길이 280cm, 너비는 133cm로 평면은 장방형이다. 벽체의 축조는 아래 부분에 판석을 세우고 그 위에 소형의 판돌을 가로 쌓기 하였으며, 위로 올라가면서 벽체를 꺽어 안쪽으로 경사 시킨 맞조임식이다.

 석실 내부는 전체 면적에 석괴를 깔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6세기 말~ 7세기 초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에서 항아리, 토기병, 단지, 삼족토기 2개, 금동제 이식,철제품편 등이 출토 되었다. 그 중에서 삼족토기는 세 개의 발이 삼각형으로 달려있는 접시형 토기로써, 직경 12.5cm, 높이 8.0cm(다리 4.0cm포함), 둘레 38.3cm의 검은 회색 토기로 2개 중 1개는 뚜껑이 깨져 있다. 1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되어있다. (현장 안내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