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3편 ; 스므티 고개와 말바위

푸른나귀 2018. 9. 30. 08:48


1. 들어가며


 일반적으로 역사라는 것은 기록과 과학적 방법에 의하여 증명이 된 정설을 말하는데 이를 정사라고 한다.

역사는 패권을 장악한 승자들의 기록으로써 존재하고, 패자들의 역사는 전설로 대부분 묻히게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문학을 이루게 된다.

 전설에는 설명적 전설과 역사적 전설 그리고 신앙적 전설로 구분 되는데 설명적 전설에는 지리적 특질, 자연현상, 식물과 동물의 특성 그리고 산이나 바위의 생김새 등에서 발생하는 것을 말하며, 역사적 전설은 어떤 역사적 사실에서 근거하여 발생하고 구전된 전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신앙적 전설은 민간 토속신앙으로 부터 발생하는 전설을 말한다.

 전설이 역사속에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정착민들이 계속 그 땅에서 살며 입에서 입으로 후대에게 전달 되어야 하는데 정착민의 감소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적어지고, 새로 유입되는 외지인들의 무관심속에 듣는이가 없으니 전설은 이 땅에서 점점 급격하게 사라지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 사회적 변화에 의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아쉽기에 시간 날 때마다 고향땅을 돌아다니면서 흔적을 찾고 미흡하나마 기록하고자 한다.



2, 말바위 전설의 의의

 

 청고을에서 화성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 오래된 소나무가 무성하여 산도적들이 성행하였다 한다. 그래서 그고개를 넘어갈때면 젊은 장정 스므명 정도가 아랫동네 주막에 모여 함께 넘어 갔다하여 스므티라는 고개명을 얻게 되었다. 50여년 전 우리 어렸을 때에도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하여 서늘한 기운이 돌았었는데 화성 넘어가는 왼편으로 김성우장군의 전설이 서린 말바위가 스므티,둔터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 어느 장군이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고려의 충신을 암살하려고 하자 그의 애마를 죽여 말바위를 들어서 그 밑에 묻었다고 하여 얼마나 힘이 쎄면 이 바위를 들었을까 하며 대단히 큰 힘을 가진 장군이었을거라 믿었다.

 보령 공주간 국도의 확장공사로 그 말바위는 반대편 백월산등산로 입구에 조그만 공원이 만들어지고 옮겨저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이 전설과 함께 잊혀저 갈 것만 같다.


 고려 말 금강의 하구 기벌포는 왜적들이 이 땅을 노략질 하는 전초적 진입로였다.

최영장군의 홍산대첩과 화약을 발명한 최무선의 기벌포전투, 그리고 이성계의 황산벌 전투가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웅천보령지역의 김성우장군은 왜적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려말 정세를 흔들던 두 영웅 최영과 이성계가 금강을 중심으로 공동의 적 왜적을 토벌하고 함께 고려를 위해 싸웠지만, 고려의 정세는 더욱 혼란속으로 빠져 들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 하자 그 반대 진영의 고려 충신들은 위기감에 새로운 국가의 참여에 반대하여 역사속에서의 패자가 된것이다.

지금도 무속신앙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최영을 비롯하여 많은 고려충신들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김성우장군도 결국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여 산속으로 피해 생을 마감 하였으며, 그의 커다란 공은 역사속에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이 지역의 지명과 자연속에 녹아들어 민중속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수많은 슬픈 전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전설과 역사적 사실을 접목해보면 그 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 할 수 있으며 역사속에 패자라고 하여 인간 삶에서의 패자가 아니고 도리어 민중속에서 승자로 남아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므티에서 바라보는 선명한 성주산 장군봉의 위용이 그 시대에도, 그 전의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땅을 지켜보며 민중들의 삶을 기억할 것이다.


3. 말바위 전설 사료


「스무고개」에서 100m쯤 아래에 「말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말을 묻었다는 말바위다. 조선(조선)때 광산김씨(광산김씨) 문중에서 무예가 익숙한 김씨(김씨) 한사람이 말을타고 한양(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중「말바위」근처에서 다른 곳으로부터 과거를 보러가는 여러 장수들과 만났는데 그들은 만너서 내기를 하게 되었었다. 내기인 즉 장수들이 화살을 하늘에 대고 쏘아 올리면 그 화살이 떨어질 때 자기가 타고온 말이 입으로 받아야 한다는 내기였다. 다른 장수들은 모두 화살을 하늘에 쏘아올리고 잽싸게 받았는데 김씨(김씨)말만 화살을 못 받았으므로 이대로 가다가는 과거에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고 단 칼에 목을 쳐서 바위를 들치고 말을 묻었다 한다. 그래서「말바위」라 부른다.(청라면 홈페이지 말바위 유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