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 1편 ; 남포읍성

푸른나귀 2018. 9. 23. 21:36


 1, 들어가며...


 옥마봉의 파란 하늘이 남포읍성에 내려 앉아 온 벌판을 누렇게 황금 물결로 일렁이게 한다.

세월이 무더위와 가뭄으로 촌부의 가슴을 울리게 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가을은 어김없이 성큼 다가오고 고향을 찾는 발걸음이 서해고속도로를 꽉 막히게 하는 귀향 행렬도 올해 또한 어김없이 올 것이다.

 귀향을 해서 한가위 명절을 두번째 맞이 하게 된 나는 매년 해오던 귀성 절차를 이제는 벗어났지만 동생들과 아들딸에게 귀성길의 어려움을 얹어준 것 같아 미안 하기도 하다.


 지금껏 고향의 역사와 지리, 문화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자부 했었지만, 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충남학 및 보령학에 대한 강좌를 일년 동안 듣고 학습하다 보니 내 자신의 관심과 지식이 너무나 미천하였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아는 많큼 보이고, 보는 많큼 알게 되는 것이 학습의 효과이듯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리라는 다짐을 하고 틈틈히 이곳 저곳을 찾아보며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작은 지식으로나마 펼쳐보고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동무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게 된다면 하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2, 남포읍성과 관아


     * 지정 ;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10호

     * 위치 ;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1


  1) 남포현 치소의 이동

     현재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에 있는 남포읍성은 세종때 치소가 옮겨지면서 축조된 읍성이다. 원래 남포현의

치소는 보령시 웅천읍 수부리 수안마을이었다. 여기에서는 고려시대의 어골문 와편 특히 관자명 와편과, 성문의 대형 문초석등이 수습되고 있다. 고려말 왜구가 침입하자 진성을 설치하기도 하였으나, 조선 세종때 새로운 터를 잡아 현재의 위치에 남포읍성을 축조하고 남포현의 치소로 삼게 되었다.

 2) 읍성의 현황

 현존하는 남포읍성의 성 내외는 전답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성내에는 남포초등학교와 민가들이 들어서 있고, 성곽의 보전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성의 평면은 거의 정방형으로 남,서,동벽의 중앙에 문지가 있고, 성외에서 보아 좌측에 각각 1개씩으로 옹성이 있다. 옹성은 동문지에 가장 잘 남아 있으며, 이곳의 옹성 규모는 높이 약3M, 폭은 4M이다. 문지의 폭은 약 6M 에 달하고, 문지의 좌우측 성벽의 높이는 약4~5M이며, 문지와 옹성부에 사용된 석재는 일반 성벽에 사용된 석재보다 큰 돌을 쌓고 군데 군데 쐬기돌을 박아서 축조 하였다.

 성벽의 네 모서리에는 바깥으로 돌출된 모양의 치성(雉城)이 축조되어 있는데 서북의 높이는 5M, 동북 치성은 3M, 남동측 치성은 4M, 서남 치성은 3M이다.  치성의 길이는 5M이고, 단부의 폭은 5M 내외로 축조 되었고, 남동쪽의 치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부가 파괴되었다. 동북치성과 동남 치성은 복원된 상태이다.

 읍성의 전체 길이는 825M이고, 성벽의 축조기법은 기단석을 10CM 정도 내밀게 놓은 다음 부정형의 할석으로 거의 수직이 되게 외벽을 축조 하였으며 성의 내측은 내탁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의 높이는 5M이고, 부정형의 할석 20~25단을 축조하였다. 성벽의 하부기단 석축은 길이 1M이상, 두께 70CM 정도의 큰 돌인데 잘 남아 있고, 이 큰돌의 틈에 작은 부정형의 할석을 이용하여 안정감을 추구하는 등 조선 전기에 쌓은 읍성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벽의 남쪽 부분에 배수구 시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성벽 바깥쪽에 논밭으로 경작되고 있는 평탄면이 있고, 서남쪽 부분은 성벽보다 1.5M 정도 아래쪽에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어 해자가 아닌가 생각 되지만 남포읍성에 해자가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1997년 이후 몇 차례의 보수,복원공사로 인하여 남벽 일부와 동벽,북벽이 원형과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다.

 ( 보령문화원 충남학 답사 자료. 2018년 9월 18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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