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항복 문서
구름 한 점 없는 오뉴월 땡볕아래
긴 고랑 쪼그리고 앉아 풀매시던 울 엄니
그놈의 잡초는 매고 돌아서면 다시 난다고
들녘으로 불어오는 실바람에
푸념 섞인 넋두리를 날려 보내더니만
흰 책상머리에서 돌아와 그 고랑에
호미 들고 풀과의 전쟁을 벌이는 아들 내외
그놈의 잡초 제초제라도 뿌려야 박멸되지 않을까
들녘으로 흘러오는 구름 그림자에
땀 식히며 어미가 했던 푸념을 늘어놓는다.
호미 끝으로 딸려오는 잡초의 무성한 뿌리수염이
밭고랑의 흙을 걸게 만들고
줄기차게 뻗어가는 줄기와 이파리의 무성함이
지렁이가 살 수 있게 그늘을 만들어 주어
그들끼리의 생존경쟁으로 더욱 풍성하게 될 터인데
고향에 돌아온 얼치기 농부는
게으르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한 허세와
좁은 땅에 한 톨이라도 더 많이 수확하려는 욕심과
가족 친척들과 동무들과 나누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내 식탁에 농약 뭍인 먹거리를 올릴 수 없다는
강박 관념에 포장되어 풀과의 전쟁을 치른다.
신석기시대 농경이 시작된 이후로
사람들은 잡초를 지긋지긋한 존재로 삼았다
오로지 주식이 될 수 있는 작물만이 善이었다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는
아직 잡초에게 야생초라고 명명할 수 없을게다.
한참 후에나
내 늙어 호미자루 손에 들지 못 할 때
이 밭두렁을 찾는 이 없을 때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잡초에게
게으른 농부가 이 들판의
모든 권한을 양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