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소멸...

푸른나귀 2016. 6. 28. 10:18



밤 늦게 대문을 들어서자 계단밑에서 무엇인가 썩는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몇일 동안 보이지 않던 그 놈의 안부가 걱정이 되면서도 농막의 풀들이 무성해지고, 장마 되기 전 수확해야 되는 마늘과 들깨의 파종이 걱정 되기에 어디서 잘 지내고 있으려니 하면서 집을 비운지 나흘이나 되었다.


대여섯해 전부터 우리 동네를 배회하던 그놈에게 계단밑에 자리를 내주고 물과 사료를 주니 집식구에게는 조금씩 곁을 주는듯도 하였으나, 내게는 경계의 포효를 멈추지 않았었다.

내가 번돈으로 제게 자리를 내주고 먹이를 주는데도 곁을 주지 않는 그 놈을 보면 얄미운 마음도 들기는 하였으나, 그놈도 인간들의 영역에 들어와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며 먹이를 찾고 번식을 하고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생명을 지켜 나가야 하기에 섣불리 인간에게 곁을 줄수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문을 들어서면서도 그놈이 있어도 무관심한 듯 곁눈으로 바라보곤 지나쳤다.


한갖 미물에도 생존의 본능은 살아 있는 것인지 번식기가 되면 아기 울음소리 비슷한 고약한 짝짓기 소리를 내어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때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원체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덕분인지 대 놓고 불만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그놈은 번식활동을 멈추지 않고 새끼들을 생산해 놓는데 어떻든 잡아서 불임수술이라도 시킬 양으로포획틀을 가져다 설치를 해 보았지만 헛수고가 되기 일쑤였다.

밤거리의 황태자 생활을 오랫동안 해서인지 조금만 의심이 들어도 접근을 하지 않는 철칙을 가진것 같았다.


그 놈은 새끼를 낳으면 어디엔가 숨어서 키우면서 조금 자라야 계단밑으로 새끼를 데려 왔다.

골목길에서 사람의 눈치를 보며 새끼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대부분의 새끼들이 몇일 사이로

없어지기 일쑤인데도 번식활동은 끊이지 않는다.

겨우 살아난 새끼들은 사람들의 영향을 덜받아서인지 포획틀에 의해 잡을 수 있어서 이곳 저곳에 수소문하여 분양을 시키기도 하였다.

이제는 그놈도 늙어서 번식활동을 멈추겠거니 하였는데 바짝 마른 체구에 배만 불룩하게 되어 또 나타났다.

집식구의 우려속에 먹이를 좀더 좋은 것으로 주기도 하였지만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굼뜸을 보이면서 늙은 것이 어쩌자고 새끼를 가졌냐며 탓하는 안쓰러움에 이르기도 했다.

배가 홀쭉해진 뒤 골목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새끼들을 찾아 보았지만 흔적이 없다고 걱정하던 차에 옆 시장골목의 좌판밑에서 새끼를 보았노라는 상인의 말을 듣고 찿아가보니 네마리나 있었다.

다행이도 주변 상인들이 분양해 키운다고 하여 안도를 하였지만 그놈의 상태는 더욱 안좋아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잡아서 동물병원에 데려 가보려 했지만 잡히지 않고  한참동안 보이지도 안았다.

몇일 전 몰골이 앙상한채 기어나와 물만 먹고 사라지더니 보이지 않게 되어 식구와 함께 골목을 뒤져 보았지만 찾지를 못하고 어디서 죽었으면 냄새가 고약하게 퍼질텐데 하며 우려를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래도 죽을땐 사람이나 짐승이나 제 죽을곳을 찾는 것인지...

계단밑 저를 위해 만들어준 나무상자 옆 틈바구니에 끼인채 구더기가 뱃속을 휘집어 놓고 스멀거려도 그놈에겐 그곳이 고향이었던가 보다.

제 새끼를 키우다가 인간에게 빼앗기고 돌팔매질을 당해도 끈질기게 생을 이어가면서 물 한모금 얻어 먹을 수 있는 이곳이 그놈이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자리였었나 보다.


한밤중에 농막에서 돌아와 몇일새로 코를 찌를듯 부패한 그놈의 몸뚱아리를 비닐봉투에 담으면서 하루라도 일찍 여기와서 몸을 맡겼으면 흙 좋은곳에 뭍어 줬을텐데...

다음날 모종삽을 가지고 뒷산 공원에 가서 사람 없는 곳에 흙을 파고 묻어주고 집에 돌아와 계단밑을 물청소 하면서 인간이나 짐승이나 삶이란 고닲프고 힘든 생이라는 것에 안스럽기 짝이 없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제 철이 오면 꽃은 다시 피어나듯  대문밖 능소화는 향을 골목으로 내뿜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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