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느지막하게 출근을 한다.
타고 다니던 승용차도 사무실 주차장에 팽개치고 여유롭게 전철을 이용해 다닌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대략 25Km정도인데 출퇴근 시간에 승용차를 타고 운행하다 보면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좁은 공간에서 짜증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주택가 골목을 삥삥 돌며 주차공간을 찾아 다닐적엔 웬수같은 똥차를
팽개치고 싶은 충동에 스트레스가 여간이 아니며 내가 싫어하는 아파트 주거문화에 대해
동경까지도 하게 된다.
전철을 타고 인천에 내려오면서 엥겔지수를 떠 올렸다.
박정희시절 먹고 사는것이 급급하던 때에 삶의 척도로 엥겔지수로 측정하였었다.
총가계지출비중 식료품비의 비율로서 가난한 가계일수록 엥겔지수는 높을수 밖에 없다.
그때는 먹는 문제가 가계지출의 절반이상을 차지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게다.
가계지출비중 가장 많이 차지하던 식료품비가 80년대 들어와 점점 줄어들면서 삶이 윤택
해 지나 싶더니 이젠 그 자리를 교육비가 떠억하니 자리를 잡고선 물러설줄을 모른다.
엥겔지수를 생각하다가 교육비 지출항목을 생각하게 된다.
연초 연말정산하려 국세청 홈피에 들어가 서류를 떼보니 자식 두놈에게 순수하게 들어간
등록금이 자그마치 2천에 가까운 계산이 나온다.(물론 대부분은 국가외상으로 때웠지만...)
그 돈이면 보통 서민들 연봉의 절반을 차지하는 폭이 된다.
두녀석이 먹고, 입고, 쓰고한 비용까지 생각해 보면 자식 키우는데 쓰이는 비용이 엥겔지수
보다 더 엄청 나다는데 현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고닮픔을 인식하게 된다.
언제쯤(IMF전)인가는 자기집 하나 가지고 있고, 중형차 한대 몰고, 자식놈들 교육시킬 정도면
중산층이라고 위안을 삼을수 있었는데, 국가부도 위기 이후에 그 중산층이 몰락하고 모두가
서민층이 되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나락으로 던져지게 된것 같다.
그 원인중 하나가 자식들의 교육비 감당해야 하는 큰 짐을 서민들이 모두 안을수 밖에 없기에
"마음만이라도 중산층"이라고 자위하던 계층이 없어진 것 아닌가 생각 된다.
행복지수란 물질적 요인으로만 측정될수 없는 것이다.
저 멀리 우리가 후진국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우리 아이들보다 불행 하다고만
할수 없고, 요람에서 흔들거리며 포근하게 잠자고 있는 선진 유럽의 아이가 우리 아이들보다
행복하달 수는 없다.
물질적 충족 못지않게 정신적 충족이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각 분야에서 많은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결국 무엇을 얻기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 하면서 어디론가 다들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끝도 없는 물질적 얻음을 쫒기 보담은 버림에 익숙해지는 것도 한 방편이 아닐까???...
어찌보면 행복지수라는 것이 물질적인 것의 포기지수인것 같기도 하다.
똥차를 쳐 박아두고 전철타고 다니니 운동량도 많아지고, 생각의 깊이도 깊어지고,
마음이 여유로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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