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인연...

푸른나귀 2010. 1. 6. 14:01

 

 

 

      옆줄에 서서 대기중인 사람의 얼굴이 얼핏 어디선가 익숙한 모습이다.

      흘금 흘끔 처다보면서 내가선 줄이 앞으로 나가자 그도 내 시선을 의식하며 뿌리치지

      못하곤 얼굴을 돌리며 놀란듯 "부장님!!!...이 필선부장님 아니세요..."하며 반색을 한다.

 

      십년하고도 한참전에 나는 광화문앞 어느 건물에서 건설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건축부의 부서장을 하면서 구리의 아파트현장과 전곡의 주상복합상가, 그리고 그외 건축공사

      관련 업무와 마포 재개발사업의 계획안을 가지고 피말리는 논쟁의 회오리바람 앞에 휩싸였었다.

      건설기술인으로서 기술자의 논리보다는 기업의 이윤추구라는 시장논리가 우선 되는데에서 오는

      수많은 내재적 갈등들이 삶에 대한 회의로 어디론가 회피하고 싶은 때이기도 했다.

 

      그를 만난것은 전곡의 주상복합상가가 경영자의 주도 면밀한 계획없이 추진되어 공사 초반기부터

      휘청거리고 있을때에 그는 그곳에 처음으로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었다.

      집에서 문산을 거처 법원으로 그리고 전곡까지 좁은 지방도로를 새벽과 밤늦게 출퇴근을 하며

      한 두어달을 같이 생활하면서 그에 대한 신상을 알수 있었는데, 그는 경상도 하동에서 나고 자랐으며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나 그당시엔 관련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기술자격증을 취득할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어 건축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건설회사에 입사한 것이었다.

 

      건축에는 전혀 기초지식도 없으면서도 수험교재를 달달 외운덕에 자격은 부여 되었지만, 현장을

      적응하는 데에는 상당히 저해 요인이 될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선후배가 있는것도 아니고 홀로 지방에서 올라와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기에 안쓰러워서 사비를 들여 서울의 전공서적 문고에 들려 몇권의 대학교재를 마련 해주

      었고 일과시간 후엔 관련 전공학 공부를 시켰다.

      수시로 현장을 같이 돌면서 그날 배운 교육내용을 점검하고, 미흡하다 생각되면 가차없이 혼내주기도

      하였었다.

      하지만, 내 버거움에 그곳을 정리하고 그 회사와의 이별이 그와의 인연이 끝이 되었었다...

 

      신정 연휴가 끝나고, 왕십리 부근의 공사현장 설명회에 참가하면서 그를 만나게 된것이다.

      총각이었던 그가 결혼하여 어엿한 가정을 꾸리고, 이젠 조그마한 건설업체의 중역이 되어 제 앞가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내가 전해준 전공서적을 신주단지 모시듯 가지고 다닌다 하였다.

      건설 현장을 이어가면서 내게서 받았던 영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십수년 만에 만난 그의 이름이 떠 오르지 않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사회생활 초창기에

      나와 만난 두어달이 그 인생길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니 내 자신 뿌듯함이 느껴진다...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 디딜때...

      아버님처럼 내게 도움을 주신 스승님(소장님)이 그립다.

      건설기술인협회에 들러 수소문 하였지만 찾을수 없었다.

      나이를 셈하여 보면 이젠 이세상에 없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굳어 졌는데도 죄책감이 느껴진다.

      내 자신이 이렇게 자리매김을 하게 된것은 내 스스로의 능력이 아니라 주변의 도움으로 내가

      이 자리에 있을수 있었다는 것을 그에게서 느낄수가 있었다...

      모든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내 자신이 축복을 받은 인생이라는것을 느끼게 하는 정초를 맞이한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