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밤나무골에서 보내는 편지(둘)...

푸른나귀 2009. 4. 27. 20:11

 

       땅거미가 어슴프레 산중턱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곤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도로를 따라 한 오백미터쯤 가면 충청북도 음성군의 경계 이정표가 쓰러져가는 페허의

       방앗간 옆에 외롭게 서 있습니다.

       한때는 이 벌판에서 나오는 볏섬지기를 빻느라 발동기가 쉴새없이 돌아 갔었을터인데

       흙벽돌로 지은집이 앙상한 몰골로 道경계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옛 영화를 말하려는지

       어둠속에서도 그 자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를 벗어나 농로길로 접어드니 관정에서 물 퍼올리는 펌프 돌아가는

       소리가 개구리 소리를 대신해서 요란스럽고, 아직 먹이를 채우지 못 하였는지 아니면 내

       발자욱 소리에 놀랐는지 야생오리 두마리가 논에서 치솟아 날아 갑니다.

       논바닥의 물속을 아무리 세심하게 들여다 보아도 우렁이나 미꾸리지의 움직임이 보이질

       않는데 물총새며 오리며 두루미들은 무엇을 찿아 먹고 있는걸까요???

       몸집은 하얀한데 깃털끝과 목부분이 노란 새가 논갈이 하는 트랙터를 쫓아 다니며 무엇인가

       열심이 쪼아 먹는것을 보며 그래도 논에는 그들의 먹거리가 충분히 있나보다 생각하였건만

       내 눈엔 그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논두렁길을 심호흡 하면서 걷습니다.

       어릴적 자운영꽃밭에서 뒹굴던 생각에 논바닥을 보니 눈에 익은 풀들이 있는데 이름이 전혀

       생각이 나질 않기에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예쁘고 노랗게 피어난 들풀들의 이름도 기억이 되질 않고 오직 쇠뜨기와 쑥과 들미나리...

       그러고 보니 들판에서 없어진 이름들이 참 많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이때쯤이면 제비들이 쉴새없이 하늘을 수 놓을터인데 아직 한마리도 구경 못하고,미꾸라지

       붕어, 피래미, 우렁이,황새,두루미,자운영,물총새,거머리...주섬주섬 세어 보아도 많습니다.

 

       개천에 나가 보았습니다.

       봄비가 그래도 몇번은 내린것 같은데 개천은 실개울이 되어 겨우 물줄기를 봅니다.

       그 작은 개울물도 양수기로 논에 물을 퍼 올리느라 농부의 마음을 애태울것 같습니다.

       뚝방길 버드나무엔 물이 올라 연두색 잎을 가지고 있네요. 칼이라도 가지고 왔으면 호뜨기

       하나 만들어 불어 보고 싶습니다.

       버들피리를 호뜨기라고 하였나요???

       그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듯 합니다. 이동네에도 예전엔 아이들이 호뜨기 불면서 이 들판을

       책보를 둘러메고 학교길을 걸어 다녔겠지요...

 

       밤이 깊어 갑니다.

       한시간정도 논두렁길을 걸으며 소나기가 스쳐 지나간 상큼한 공기에 취해 봅니다.

       자운영꽃밭에서 뒹굴던 청고을의 옛 논두렁 길을 그리워 합니다...

 

 

 

 

 

 

 

'짧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나무골에서 보내는 편지(다섯)...  (0) 2009.05.19
밤나무골에서 보내는 편지(셋)...  (0) 2009.05.03
밤나무골에서 보내는 편지(하나)...  (0) 2009.04.24
4월에...  (0) 2009.04.18
우물안 개구리의 꿈....  (0) 2009.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