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끊을수 없었던 인연...

푸른나귀 2009. 1. 10. 16:49

 

 

     스므살 무렵...

     종로통이든, 영등포 로타리든 큰길가엔 지하에나 지상에나 다방(茶房)들이 많았었다.

     팔각 성냥통옆엔 동전 한닢으로 태어난 띠에따라 그날의 운세를 볼수있는 통이 자리하고,

     설탕통과 프림통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유리 재털이도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한복입은 마담과 어여쁜 레지(아가씨)들이 테이블을 분주하게 오가며 뮤직박스의 D.J에게

     신청곡을 전달하면 구수한 멘트와 함께 노래를 틀어주곤 하였다.

     담배연기 자욱한 다방안에서 연인들과 또는 친구들과 쓰디쓴 커피에 설탕프림 잔뜩 집어넣고

     시끄러운 노랫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뭔놈의 인생이야길 해댔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때는 그곳만이 젊음의 장소였기에 약속을 해도 그곳에서들 만났었다.

 

     유리 재털이위에 얹어져 아롱대며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의 하늘거림이 좋았다.

     행여나 내가 아는 팝송이라도 나오면 흥얼거리며 발장단을 맞추었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보며 그냥 앉아 있는것 만으로도 좋았었다.

     빈털터리의 호주머니에 어디로 나갈수 없기에 레지의 따가운 눈총을 비켜가며 그곳에

     버티고 앉아있길 좋아했다.

     친구들이 담배 한모금 빨아대곤 후욱 불어내는 연기로 도너츠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그렇게 멋질수가 없었다.

 

     얼마후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여 오뉴월 가뭄속 더위와 그 무거운 M1 소총을 머리에 이고

     황산벌 언덕을 기어가는 기합을 받으면서, 그 고된 훈련속에서도 필터없는 화랑담배는 내옆

     전우들을 즐겁게하는 물품일뿐 내겐 그져 담배연기를 바라보는것으로 만족할수 있었다.

     훈련이 끝나고 경복궁앞 장난감 병정이 되어 지나가는 아가씨들의 어여쁜 모습을 눈동자를

     굴리지 못하도록 고참들에게 훈련을 받았지만, 그래도 눈동자를 고정시키고서도 볼수있기에

     고된 군생활에서도 담배의 유혹에 현혹되질 않았었다.

     상병고참이되고 제대 일년을 남겼을무렵 내게도 노란원피스 즐겨입는 여인이 찾아왔다.

     외출외박때면 영등포로타리의 음악다방에서 그녀를 만나 차 한잔하고, 노래듣고, 마냥

     여의도 윤중로를 걷다보면 해가 짧다는것을 알기도 하였다.

     그녀는 내게서 빈틈 없어보이는 모습에서 담배연기처럼 여유있게 피어오르는 마음을 원하였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위해 자대에 들어가 그때 화랑담배 대신 나오던 한산도(은하수?)를

     처음으로 입술에 입맞춤을 해 보았다.

 

     그녀가 떠나가고 스므해 가까이되어 그녀를 다시 만나고, 석달만에 다시 천상으로 보내고

     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화랑,은하수,한산도,선,디스,시즌... 이름만 서양식으로 바뀌

     었을뿐 내 입술에서 끊을수 없는 인연이 되어 버렸다.

     삶에 지쳐서 술을 찾기보다도 마음을 푸욱 녹일수 있는 그 인연을 버릴수가 없었다.

     가랑잎을 태우는듯한 내음의 향기를 느낄수 없는 자들을 이해할수 없었다.

     제 몸을 태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고향의 벌판을 느끼게하는 그 푸근함을 알지못하는

     그 무지함을 경멸하였다.

     제 스스로를 산화하여 인간의 마음에 커다란 위안이 되어 주는것은 신(神)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뭇사람들에게 마귀로 몰림을 당하는것에 안타깝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두렵다.

     언제 어디서 나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몸뚱아리를 불태우려할지 모르는일이 될것처럼 느껴지기에

     삼십여년의 세월을 그와함께 노닥거리며 사랑하여 입술로 빨아댕기고, 미워하여 땅바닥에

     팽개치면서 구둣발로 사정없이 짖이겨 버렸는데도 내게서 떠나질 않았다.

     모진 인연도 하늘에서 맺어진 인연이라는데...

     그것을 거역하고 버려야 한다는것이 두렵다.

 

     하기사 그 숱한 세월 하루도 빠짐없이 그를 사랑했으니 그도 이젠 내가 싫어질때도 돼었겠지???

     남들은 날보고 그 인연 끊지 못한다고 나약한 존재라고도 한다.

     이제는 그님을 보낼때가 되었다.

     내게 살며시 다가와 사랑하다 살며시 떠나간 님처럼 보내야 할때가 된것 같다.

     끊을수 없었던 인연을 끊어야 할때가 온것을 알기에 보내야 된다...

     내 사랑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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