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옛친구여...

푸른나귀 2008. 12. 16. 20:51

 

 

 

     하루일을 한나절에 정리하느라고 그날도 바쁘게 움직였다.

     작업장에서 신었던 작업화도 미쳐 갈아신지도 못하고, 영등포역으로 가면서야 깨닫게 되었다.

     요즈음 낫살 먹어가는것을 생색이라도 내는양 건망증과 건강도 함께 신경을 건드리는듯 구두도

     챙겨신지 못하고, 허리통증을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하면서 이 시대의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꿋꿋한 대들보처럼 보이려는 노릇에 절대절명의 의무인양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대전역에 도착하여 전철타고 장례식장에 들어서다 문득 화환속의 "옥천고등학교"조문리본을

     보곤 뇌리속을 스치는 인연이 기억되었었다.

     오늘아침, 충북 음성을 출장가면서 차안에서 왠종일 옥천의 그림자를 떨구지 못하고 그놈의

     환하게 웃던 모습에 내 늙어가는 모습이 겹쳐지는듯 해 씁슬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내 젊은시절 방학때면 부산행 완행열차를 타고 옥천역에 내려 읍내 가운데를 흐르는 개울의

     다리를 건너 소방소 뒷집에서 몇일을 지내곤 하였다.

     그놈의 아버님이 건축업을 하셔서 산골 깊이 대청호부근의 주택을 짖는곳에서 개울로 나가

     모래를 채취하여 옮겨드리기도 하고, 저녁엔 골짜기에 족대로 물고기를 잡아 막소주 한잔과

     총총히 내려쏘이는 별빛에 미래를 이야기 하기도 하였다.

 

     나보다도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이면서 돌쇠같은 모습의 그놈에게 정이가고 가까웠던것도

     내게는 없는 그 무엇인가를 소유했기 때문이었을것이다.

     군에 입대하고 주고받은 편지들과, 휴가때 제집으로 가기도 전에 우리부대로 찿아왔던 그 모습

     이 눈에 선하다.

     제대를 하고 원주에서 현장생활을 할때 그넘은 풍기에서 현장생활한다며 풍기인삼 한바구니를

     가지고 밤열차로 내게 왔었다.

     충북음성에서 김치공장을 짓느라 산골짜기에서 외롭게 고생할적에도 그넘은 금산에서 일한다며

     금산인삼을 한바구니 챙겨들고 찾아 왔었다.

     그놈의 지론은 네놈은 몸이 약해 인삼으로 보신을 해야된다는 뜻이었다.(군입대시58Kg,재대시

     65Kg의 빼빼 마른체격이었다)

 

     여덟해전 이맘때 올해는 사업이 어떻게 잘되고 있느냐며 안부전화를 했을땐 금산에 자리잡고

     지게차사업과 상하수도 사업이 아주잘 되가고 있다며 꼭 한번 내려와 한잔 하자고 했었다.

     반가움에 건강조심하면서 사업잘 해나가라고 당부를 했었는데, 구정 명절날 다시 전화를 해보니

     제수씨의 울움 섞인 목소리로 멀리 떠났다고 말을 흐린다...

 

     그 다음날 열일 제쳐두고, 정신없이 차를 몰아 그놈의 집에 가보니 설 몇일전 공사입찰을 따놓고

     좋아하면서 앞으로의 구상에 골몰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잠을자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졌다는것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감추면서 일찍 장가들어 성장한 두아들과 대청호를 바라보는 한언덕에 누워있는

     그놈에게 소주 한잔을 부워 주었다...

 

     어떤때는 형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였고, 어떤때는 술먹고 망나니처럼 굴땐 쌍소리가 나오기도

     했었고, 나보고 장가 안간다고 한번 시험하러가자고 꼬드기도 하였었는데...

 

     젊은시절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은 같이하고팠던 그놈이 오늘은 유난히도 생각난다.

     잊고살던 옥천이라는 지명이 내게 이렇게 크게 다가오리라곤 생각도 못하였었는데,

     어제 상가집에서, 그리고 충북음성을 다녀 오면서 그넘을 그리워 한다...

     그놈과 헤어진지도 여덟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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