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카라에 갈래머리 소녀는
잘록한 허리 벨트에 숨기고
독립문에서 무학재를 넘어
홍은동 산동네까지 걸었다.
어깨를 맞대고 걷던 소년은
망설이다 살며시 손을 잡곤
따스함이 온몸에 전율이 되어
통행금지 시간에 쫏기는것 마져도
잃어 버렸다.
뒤돌아 가는 소년에게
그 소녀는
한해후 첫눈 오는날
종로 YMCA 지하다방에서
웃으며 만날수 있자며
쪽지편지를 쥐어 주었었다.
첫눈이 내리던날
광화문에서 종로통을 걸어서
차마 그곳엘 들어서지 못하고
숙녀가 되어 다방입구에서 서성이는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던
소년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
국방색에 짖눌리어
장난감 병정이된 젊은이는
노란색 원피스를 즐겨입던
여인을 사랑했었다.
별빛 쏟아지는 초소에서
그녀가 보내준 사랑의 편지를
닳고 닳도록 읽었다.
개구리복 입고 전역하던 그날
그 여인은
십년후 첫눈오는날
광화문 해태상 앞에서
웃으며 만나자며 떠났었다.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이별하지 않으리라
모든것 팽개치고
객지를 떠 돌아다니며
자신의 젊음을 잊으며 살아왔다.
언제
십년이란 세월의 첫눈이 있었는지
그녀는 그때 광화문 해태상앞에 왔었는지
그것도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왔었다.
첫눈이 오는날
그녀는 이젠 길가에
스쳐지나며 마주칠일도 없건만
그래도 그약속이 그리워진다.
***
첫눈이 오는날
이제는 그런 약속을 할수있는
젊음도 없다는것을...
이제는 그런 믿음을 줄수있는
기회도 없다는것을...
아쉬워 한다.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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