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자 인천일보의 3면에 "일제시대 인천 이전 추정 충남 3층석탑 반환요구"
라는 기사가 눈에 띠었다.
1910년 중반 일본인에 의하여 불법으로 이전되어 인천시립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소장하고있는 3층석탑의 반환을 보령시와 의회가 공문서로 요구 하였다는 소식과
더불어 보령시 대곡동(?) 탑동마을에 이 석탑의 지석대인 큰바위의 바탕이 존재하고
인천시립박물관 문서에도 보령에서 온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고 한다.
문화재는 원래 있던자리에 있어야만이 빛을 발할수 있는것이라며 보령시는 1995년
부터 지속적으로 인천시에 요청하였지만 인천시는 돌려줄수 없다는 기본 입장으로
보령시가 정히 원한다면 장기영구임대방식의 대여를 검토중이라 한다.
인천시는 시 문화재로 지정할정도의 가치를 가지지 않은것으로 결론지었다 하니
인천시는 인천시민의 재산이기전에 우리 모두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기에
빠른시일내에 3층석탑이 원래 세워져 있었던 보령으로 보내져 제 자리에서
빛을 발할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천과 충남은 예로부터 해상을 통한 인적, 물적 유통으로 가까운 곳이다.
일제시대에 주로 인천지역의 염전으로 노동인력의 유입은 안면도,서산및 보령으로
부터 수많은 충청인들이 모여 들었고, 산업화의 발달은 충청인의 집중적인 인천으로의
인구유입이 이루워졌다 한다.
현재 인천인구의 30%정도가 충청인으로 결성되어 있으며, 인천지역 재정계및 모든
부분에서 충청인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따금 보령시의 행사때면 보령출신 구청장및 의원들이 초청되는데 보령시에서는
그들을 활용하면 충분히 인천시의 문화재 반환에 조속한 처리를 할수있으리라 확신한다.
그곳을 터전으로 살고있었던 사람이나, 살고있는사람이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
외국으로 빼앗기고, 불법반출된 문화재만 아쉬운것이 아니다.
밭고랑 사이에 허물어져가는 돌탑 하나에도 조상들의 숨결은 살아있다.
돌담사이에 이끼끼인 사금파리 하나에도 그 얼들이 숨쉬고 있다...
오늘 보령신문이 아닌 인천일보를 보면서 이 소식을 접하게 되니 뭔지 모르게 씁쓸하다.
인터넷으로 보령신문과 보령시청을 검색하여 좀더 확인할려하니 검색이 않된다.
내 검색 능력 부족이라고 믿고 고향에서 많은 노력하고 있는중으로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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