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부터 인터넷으로 주말의 일기예보에 신경을 썼었것만,
온 하늘이 뿌연하게 황사로 덮여버리니 걱정이 앞섰다.
어려서 소풍가는날 비라도 내릴까봐 전날밤 하늘을 바라보며
별이 초롱초롱 하여도 걱정을 하던 생각과 실루엣처럼 겹쳐진다.
대천역앞에 모여 해장국 한그릇과 소주한잔으로 목을 축이는 동안
산에 올라가 요기를 할 김밥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를 챙기어 베낭에
나누어 분배를 하고 차량을 대성주유소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한후
따뜻한 커피한잔씩 그집 어여쁜 아주머니에게서 접대를 받는다.
고맙게도 그집 아주머니는 우리를 옥마산 절집 아래 산행 시작하기
좋은 곳까지 손수 운전을 하여 모셔다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 옛날 시커먼 석탄이 엄청 쌓여 있었고,석탄을 실어나르던 화차의
차량수를 헤아리다 잊어먹을 정도로 긴 기차가 다니던 옥마역은
어디였었는지 산 중턱은 도로가 훵하니 뚫려있고,뭔 청사인지도
커다랗게 들어서 있었다.
절 입구에서 주유소 아주머니와 작별을 하고 산행길로 접어드니,
진달래꽃이 능선이 마다 불이 붙은듯 활짝 만개를 하여 우리를 반긴다.
가파른 능선이길을 힘겹게 오르는길은 황사는 물러 갔지만 빗방울이
한두개씩 떨어지기에 마음을 다시 졸이게 한다.
대천 시내엔 비가 내린다는 말에 정말로 힘든 산행길이 될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은 서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씻기고,
산행 첫걸음의 힘듬은 점차 사라지고 다리에 힘이 붙으니
옥마산의 정상이 보인다.
발 아래 펼쳐진 대천 시가지와 앞바다,그리고 멀리 두둥실 떠있는
섬들을 보니 온 몸이 짜릿해져 옴을 느낄수 있었다.
공군부대로 뚫려있는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여유로운 마음으로 걸어내려갈땐
비구름이 언제 있었냐는듯 햇살이 비친다.
노란 산수유(윤박의 말로는 유사품종이란다)꽃과 진달래,그리고 발밑에
쑥,제비꽃들의 환영을 받으며 동무들과 걷는길은 얼굴에 웃음꽃으로
가득 채워져 즐거움 뿐이었다.
한시간 정도의 옥마산 산행을 마치니 성주터널 위 옛길이다.
아주 오래전 부여갈적 구불구불 성주산 넘어가는 버스가 신기하였는데
그길에 내 두 다리로 서 있슴을 감회롭게 젖어든다.
이곳부터 진정한 성주산 종주가 시작되고 10여Km의 산행이 우리를 기다린다.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솔밭사이길을 걷다보니 솔가루에 발바닥이
푹신한 간지러움을 느낄수가 있었다.
능선이를 오르내리며 청천 저수지가 보이는듯 하더니 다시 대천 시내가
눈에 들어오고, 다 오른듯 하더니 눈앞 큰 봉우리가 다시 나타나고...
아름드리 소나무의 송진 채취 흔적이 그 나무의 수령이 우리 할아버지
그의 아버지때부터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감을 존경스럽게 바라본다.
윤박사의 송진에서 그 무섭다는 가미가제 특공대의 항공기유를 만드는
화학 공식을 얻어 들었었것만 외우진 못하였다.
돌탑이 있는 봉우리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강행군을 하며 아늑한곳을 �O아 베낭을 내린다.
준비해온 도시락에 정재가 바쁘게 움직여 구해온 쭈꾸미와 간재미,
막걸리에 쏘주 한잔이 점심시간을 넘기며 올라온 산행길의 힘듬을
완전이 사라지게 한다.
청천 저수지가 완연하게 보이고 굿고개를 넘어 청라로 들어서다보면
향천리가 별반 큰 마을이 아닐거라 생각 했었는데 아니었다.
골안에는 수많은 마을과 집들이 도로에서 떨어져 펼쳐저 있었다.
승질이가 우리 동창중에 갬발보다도 더 많은 향천 동네애들이 있었다는
말이 이제서야 인정을 하게 되었다.
백재고개를 넘어 성주사지로 소풍을 갔었다는 말에 나는 기억이 되지
않아 재차 물어보니 내 전학간 다음해 6학년때란다.
이고개를 넘어 소풍을 다녀오던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듯하고
나무석정이와 솔가루를 보며 나무하던 시절을 그리워 하는 친구도 있었다.
드디어 청고을이 완연히 보이는곳,
어려서 갬발저수지위 산봉우리로 소풍을 왔었던곳,
이태훈 선생님이 날으는 양탄자를 얘기해 주었던곳,
처음으로 바다가 청천저수지 보다 크다는것을 알았던곳,
신작로 따라 차창밖으로 언젠간 가리라 싶어 쳐다보던곳...
그곳에서 함성을 질렸다.
그곳에서 청고을 사랑을 느꼈다.
먹뱅이 고개...
청고을의 수많은 아버지와 우리의 친구들이
성주탄광으로 간드레불 밝히고 밤낮으로 넘었을 고개...
두개의 말뚝만이 고갯마루에 밖히어 수많은 세월을 지키고 있었다.
지친몸을 더 종주하기엔 힘이 들것 같아 갬발 동네로 내리 찢기로 했다.
제무시라 불리던 탄차들이 고갯마루 바로 아래까지 다녔었는데
그 흔적조차 발견하기 힘들었다.
가시에 찔리며,버럭돌에 미끄러지며,나무등걸을 넘어서
서로 부축해주며 힘들게 내려오는길에 폐광앞에서 휴식을 취했다.
폐광에서 불어 나오는 바람이 입김까지도 나오게 한다.
수십년 묶었을 칡넝쿨,하늘높이 뻗어 올라간 다래넝쿨,
�弔� 움트는 두릅나무, 취나물...
봄이 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냉풍욕장에 다다르니 여섯시간의
대 장정이었다.
재승이와 윤신이의 차량도움으로 갬발동네를 벗어나며
그곳에 살던 아이들을 이야기 하였다.
언젠가 그들과 함께 오늘 끝내지 못한 성주산의 맥을 돌아볼수있는
날을 만들자고...
고속도로가 무척 밀린다 하여 국도로 길을 잡았다.
자정이 되어서 집에 들어서니
꿈같은 하루였슴을 모두에게 감사 드린다.
2006.04.11.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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