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이 문구 저 "매월당 김시습"
청라에서 무량사를 가려면 성주나 웅천을 거쳐 시외버스로 비포장길을 한참이나
덜컹 거리며 강원도 산골 마냥 지나야 했다.
외산면에서 내려 한 십여리를 걸어가노라면 이곳도 충청도란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였지만 장승이 넘보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저녘짓는 연기가 자욱 했다.
그곳이 김 시습이 생을 마감한곳이라는 것은 한참후에 안 일이다.
보령이 낳은 소설가중 이 문구는 "관촌 수필"로 고향의 옛이야기를 캐어 소설화
시켰고, 작금에는 생육신의 한분으로 추앙받고 있는 매월당 김 시습을 추적하여
뭇 소시민들이 김 시습을 알기쉽게 스토리를 전개하여 간다.
오세동이라는 신동소리를 들어 가면서 성장하던 시습이 세월속의 주류에 포함되지
못하고 외각속의 비주류로 걷돌아 살아 가지만 선비로써의 대쪽같은 긍지속에서
님의뜻에 반하는 일을 행하지 않음은 우리의 요즘 세상에도 요구되는 면이 있다.
한시와 더불어 운풀이를 곁들여 기록을 하여 한글세대로 자란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풍류시를 음미할수 있고,어설프게나마 한시를 �셉떳�기에 할수있기에
여간 읽기 편하지 않을수 없다.
이다음에 성주산 화장골 등산할적에 만수산으로해서 무량사로 하산할 발걸음이
된다면 매월당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겠다..
둘, 홍 석중의 "황진이1,2"
세월이 변하여 북한의 소설을 책방에서 버젓이 살수있음은 아이러니컬 하다.
예전 남의 눈을 피해 몰래 읽던 불온 서적을 생각 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대부분의 북한 작품은 지주,친일분자, 제국주의를 규탄하는 노동자 농민(소작농)
의 혁명적 승리를 향하여 기록되어 있지만, 그 부분을 배제하고 읽는다면
우리가 잃어버린 언어들과 정경들을 �O을수가 있다.
홍 석중은 대를 이은 문학가로"황진이"를 남에서도 극구 칭찬할 정도의 작품을
써 내려가 북한의 통념상 기생을 주제로 소설을 구성하고, 성적인 표현까지
과감하게 표현을하여 북한의 주민들이 과연 스스럼 없이 포용할수 있을런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곳곳에 공산주의가 추구하는 사상적 사고가 뭍어 있지만,전체적인 문맥의 흐름은
과연 대 작가답다.
다만 황진이의 아름답고 애틋한 시들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한점과,한문 표기가
없는 북한의 글이라 원문표현 절귀를 바로 같이 비교할수 없슴이 아쉽다..
셋, 정 민 저"미쳐야 미친다"
조금은 젊은 우리세대의 지성인으로써 조선시대의 열정적인 선각자들을
연구하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지하고져 논 하였다.
평범한 삶을 추구하고 안착하고져 하는 우리세대들에게도 이제는
어느 주제에든 미치도록 몰두하고 파고들려하는 열의가 필요 하다는것을
선인들에 의한 비유를 한것이다.
쉽고 급하게 시작하고,경솔하고 그르치게 마무리 하는 조급성 및 경솔성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두세번 글을 음미하며 읽어봄직 하다..
마치며,
동지가 낼모레이니 겨울밤은 깊기만 하다.
동네 책방이라도 한번 들러 신선한 종이 잉크냄새라도 맡아 보면서
주인이 아줌마라면 농 한번 건네고,한번쯤 고상한척 해봄도 괜찮다.
5호선 타고 올림픽 공원옆 율복이네 책방의 아저씨하고 데이트 하면서
책 한권 슬쩍 해와도 전철요금 공제 하고도 수지맞는 일 아니겠는가?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라 했으니 그집 주인 양반도 적선한 셈 칠테고...
책이란,따듯한 아랫목에 배깔고 누워서 읽다보면 베개로도 사용 할수있으니
이 겨울철에 읽어야 제 멋이 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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