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아파트 단지가 서울 변두리 논밭이었을 적에...
까까머리 남학생 한녀석과 갈래머리로 땋아내린 여학생이
오목교에서부터 어스름한 안양천 방죽위를 걸어 십리길이 넘는
우리집을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밑에 여학생을 남겨두고 골목으로 난 창문을
두드리며 그 남학생은 날 부른다.
주섬주섬 옷을 걸쳐입고 나가보면 꼭 둘이서 우리집을 �O아 왔었다.
수줍은듯 돌아서 있는 그녀를 데리고 야트막한 동산에 올라
무엇을 이야기하고,무엇을 하였었는지는 기억 멀리 저편에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군생활을 하던 어느날 그 녀석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었다.
준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비상사태 였었는데 그녀석은
외출증을 끊어 위수령(외출 제한 지역)을 넘어 철모에 단독군장
차림으로 서울에 들어 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오늘 서대문 어디에선가 사랑하지도 않는 다른남자와
결혼을 한다고...
보내더라도 자기가 눈물로 축복해 주어야 한다고...
마음만은 같이 �O아보고 싶었지만 내 자신도 군에 옭매여 있기에
빨리 부대에 복귀 하라고 종용만 하였을 뿐이었다.
결국 그놈은 예식장을 �O지 못하고 눈물 흘리면서 부대로 복귀하였다.
전역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결혼하고 아이들이 대학에도 가게 되었다.
이따금 술 한잔에 그 시절이 떠오르면 '장밋빛 스카프'를 부르며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것을 슬며시 볼수 있었다.
우연히 지난주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수도권 작은 도시에,그것도 그놈이 살고 있는 그 도시에서
그녀는 살고 있었다.
몇일후면 그녀를 볼수 있을 터인데 고민에 휩싸인다.
그 아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내가 어찌해야 옳을까???
이성간엔 우정이 존재 하지 않는다고 그렇게도 강조 하던놈이
이성간의 우정이 가능하다고도 주장했던 내가 아찌 해야 할까???
한번 �O아봐 달라고 한잔술에 취하면 부탁하던 그놈의 장밋빛
스카프 노래가 귀에 선하다.
많이 변해 버렸을 그녀의 모습도 궁금하다.
참 노래를 잘 부르고 생활력이 강인한 친구였었는데...
젊은시절 핑��빛 청춘을 쫓다가 전역을 앞두고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양 어깨위에 짊어 지워진 삶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 하였을때
그놈이나 내나 사랑하는 여인에게 거짓말이라도 확신을 주었었더라면
가슴 한귀퉁이에 감추어두고 살아가지는 않았을 터인데...
왜 그시절에는 삶이 두려웠었을까???
20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