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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편 ; 청라 내현리 말무덤

백현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면 ' 내현리의 서쪽 마을로 새터, 만취동, 휘유개를 통칭하여 백현(白峴)이라고 하는데 휘유개의 한자식 표기이다. 마을 남쪽 영매산 끝에 기묘한 바위가 있는데 벼랑으로 된 큰바위 위에 다른 큰 바위가 얹혀 있으며 가운데 끼인 굄돌 때문에 무너지지 않고 지탱되고 있다. 굄돌이 받치고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괸바위라고 부른다.  옛날 여자 장수가 성주산에서 치마폭에 큰 돌을 가져다 굄돌로 받쳐놓고, 어려워서 "휘우"하고 쉬었기 때문에 괸바위와 휘유개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는 전설이 있다. 또 휘유개 마을 가운데 리도 201호 도로변에 돌무더기로 된 말무덤이 있는데 옛날 충신 김성우장군이 고려 반천년의 국조가 무너지고 새나라 조선이 창업할 즈음 천지운세의 섭리를 개탄하며 자신의 말을 목베..

제186편 ; 청라 내현리 굉돌 바위의 변화

영매산의 서남쪽 대천천변에 위치하였던 굉돌이 2023년 봄에 발화된 산불로 숲이 완전히 연소되고, 2024년 수해로 붕괴되었다는 지인의 말과 수해로 인한 하천제방 확장공사가 진행 되고 있다는 말에 혹여 제방공사로 전설이 서려있는 굉바위가 공사로 인하여 사라지지나 않을지 궁금하여 답사를 진행하였다. 내 블로그 제26편(2019년02월23일)에 대천천변으로 전설을 담고 있는 벼락바위와 굉바위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 나원리에 있는 벼락바위는 2007년도 수해로 완전히 사라졌는데, 굉바위 마져도 5백여년 전설을 담고 있다가 사라졌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 확인하고 싶었다. ( 위치 비정 ; 청라면 내현리 산1번지)  보령문화 연구원에서 발행하는 '보령문화 제14집(2005)'의 표지 사진으로 굉바위가 인쇄되어 ..

제185편 ; 소양리 이경탁묘 무인석

청라면 소양리 둔터는 원래 한산이씨가 집성촌을 이뤘으나, 모두 떠나고 다양한 성씨들이 살고 있다. 동네 뒷산(소양리 산 15-13)은 한산이씨네의 광대한 종중산(약 10만평)으로 이곳에 세거했던 분들의 묘소가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는 보령지역에서 잘 볼 수없는 석상이 4기 서있다.  한산이씨의 보령 입향은 이지함의 아버지 이치가 광산김씨 광성부원군 김극성(金克成, 1474~1540)의 누이와 결혼하면서 청라에 들어온 것이 계기가 된다. 이치가 아들을 넷 두었는데, 첫째 지영은 일찍 사망하였고, 둘째가 지번으로 영의정인 산해와 귀학정의 주인공 산광을 낳았다. 셋째가 지무로 명곡을 낳았는데 이분이 둔터에 뿌리내린 한산이씨 명곡파의 시조가 된다. 넷째가 지함으로 산두, 산휘, 산룡, 산겸을 자식으로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