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

토룡의 변(土龍의 辨)

푸른나귀 2021. 5. 22. 20:21

 

어디를 가던 길이냐고 묻진 않으마.

지나온 흔적마저 화석이 되어

논두렁에 멈춰버린 너의 나신(裸身)이

검은 가죽만 남긴 채

풀냄새 흙 내음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하늘의 빗소리만 기다리누나.

 

건너편 물 대인 논에는

백로의 긴 주둥이가 널 기다리고

트랙터의 뒷바퀴가 거대할진대

잠깐 내린 여우비에

온 세상이 네 세상인 양

그 길을 꼭 건너야만 했단 말이냐?

 

박제되어 꼬부라진 너의 몸뚱이를

누가 기억해 준단 말이냐?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란 유채꽃 이파리만이

지렁이의 주검 위로

무심하게 흩날릴 뿐이다.

 

* '작가와 문학 제19호' 기고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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