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48편 ; 평리 평산신씨 정려각

푸른나귀 2022. 4. 4. 17:26

1. 들어가며

 

     웅천읍 평리(동막골) 이재 백이정(彛齋 白頤正) 선생의 묘택을 답사하면서 우연하게도 전면과 좌우측이 한칸으로 되어있는 맞배지붕의 정려각을 만났다. 주변으로 이 각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지 않아 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백씨 가문으로 시집 온 평산신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정려각이었다.

 옥산사 옆 도로변에 설치한 이 정려각은 개울가 쪽으로 낮은부분을 견치블록으로 쌓고 성토를 하여 부지를 만들고, 단청과 지붕을 보니 세운지 얼마되지 않은 듯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신씨 열녀문을 검색해 보니 이곳에서 약 3km 떨어진 주산면 화평리 약현마을 구릉에 세워진 열녀비를 문중의 사패지인 이곳으로 옮겨온 것 같다.

 

 평산신씨(平山申氏)는 남포인 백락완(藍浦人 白樂完)의 처로 남편이 죽자 3년 상을 마치고 종상일에 약을 마시고 자결을 하자 이 열행으로 1682년 정려가 내려졌다고 한다.

 비문에는 '열녀 고사인 백락완 처 유인 평산신씨지문(烈女 考士人 伯樂完 妻 孺人 平山申氏之門)'이라 새겨져 있고, 현액에도 같은 내용의 붓글씨가 쓰여있다.

 지역의 유림들은 효행을 나라에 알려 관직이나 정려를 수여 받도록 노력을 했는데, 남포인 백태진(白泰鎭, 1804~1881)은 늙은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한겨울에 붕어를 잡아 봉양하는 등의 효행으로 남포의 유생들이 통문을 돌리고 고을의 수령과 암행어사에게 소지를 올려 통훈대부(通訓大夫)를 추증받게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남포백씨의 효행과 효부의 정절이 빛났다고 볼 수 있겠다.

 

 

2. 평산신씨 열녀문

 

     @ 위치 ; 웅천읍 평리 산 36-1 (옥산사 옆)

 

   @ 평산신씨 정려각 전경

   @ 평산신씨 정려각 정면 사진

   @ 정려각 내 현액

   @ 정려각 내 평산신씨 열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