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24편 ; 홍성 사운고택

푸른나귀 2021. 7. 27. 19:39

1. 들어가며

 

   서해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 고향과 서울을 오가는 길을 화성에서 예산까지의 619번 지방도를 주로 이용하였다.

  예산을 거처 645번 지방도를 통하여 인주를 거치고, 아산방조제를 지나 평택에 들어서는 이 길은 여간 막히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 길만이 귀경하는 외통수 길을 비켜 올라갈 수 있어 한참동안이나 이용하였다.

 이제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왠만하게 뚫리어 619번 지방도를 달리는 일이 없어졌는데, 모처럼 이 길을 달리면서 눈길을 주었던 곳곳이 변하여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전 가을인가 총동창회 플랭카드가 휘날렸던 장곡초등학교 반계분교는, 언제 폐교가 되었는지 썰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보게 되니 헛헛한 느낌이 온몸으로 전율이 되어 감기는 것 같다. 

 이 619번 지방도는 조선시대에는 금정도라고 불리는 중요한 교통로로서 부여에서 한양으로 연결되는 정보통신의 역로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도로를 좌우로 소중한 문화유적이 남아 있기에 관심을 갖기 충분하며, 보령, 청양, 예산, 홍성을 아우르는 통로역활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사운고택은 화성 용당리 금정역 유적지에서 옥계삼거리를 지나 산상삼거리를 조금 지나서 좌측으로 고미당 마을 정자나무로 들어서면 사운고택의 주차장이 나온다.

 도로에서 몇 십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옛 양반네 집의 정원과 고택을 볼 수 있기에 잠깐 발길을 멈추고, 소슬한 바람에  매밋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옛정서에 빠져보는 것도 좋으리라.

 보령지역에는 현존하는 고택이 많지 않아, 주변지역의 고택을 들러보게 되는데, 홍성이나 예산에는 고택들이 제법 보존 되고 있는 듯 하다.

  안채에 들어서자 돌을 박아 세운 징두리벽에 기왓장으로 천하태평이라 기록을 하고 태극의 괘를 새겨 놓은 쥔장의 마음이 뜰팡으로 떨어지는 햇볕처럼 따사로울 것 같다.  

  이 길에 들어설 적에는 화성 채제공의 상의사, 아계 이산해의 유택, 화성 용당리 정약용 사적비, 면암 최익현선생 묘택 등을 함께 답사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2. 사운고택

 

    * 지정 ; 국가민속문화재 제188호

    * 위치 ; 충남 홍성군 장곡면 홍남동로 989-22

 

  양주조씨의 정착은 중추첨지부사 조태벽(趙泰碧, 1645~1719)이 낙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조태벽은 충정공(忠靖公) 조계원(趙啟, 1592~1670)의 손자이다. 조계원의 오는 약천, 자는 자장이며, 인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존성(存性)의 아들로,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의 사위가 되며,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의 문인이기도 하다. 또한 인조 계비인 장열황후(莊烈王后)의 작은아버지로, 1628년(인조6)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후예 중 조중세(趙重世, 1847~189*, 자 사운)는 문경 현감으로 재직할 때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구제하고자 홍주 본가의 양식을 실어다가 나눈어 줌으로써 백성을 구제하였고, 고종 31년(1894)홍주의병의 봉기에 군량미로 쌀 239두를 보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양주조씨는 우리 전통 미덕이라 할 수 있는 나눔의 정신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문이 온전하게 이어질 수 있는 근원이 되었다.( 현장 안내판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