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제108편 ; 화성 채제공 상의사(尙義祀)

푸른나귀 2020. 11. 20. 19:35

1. 들어가며

 

      보령에서 청양땅은 지척에 있는 이웃 동네이다.

    보령~공주간 36번 국도를 따라 청라와 화성사이 스므티재를 경계로 지역이 나뉘어져 있지만, 예로부터 오일장이나 집안간 혼사로 지역간 교류가 흔하게 이루어졌다.

  혹자는 성주산의 줄기가 성태산, 백월산을 지나서 스므티라는 고갯길을 내주고 오서산으로 맥을 이어가면서 분수령을 만들어 청양과 보령의 물줄기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보령의 물줄기는 대천천을 큰줄기로 바로 서해바다에 들어서는데 반해 청양쪽은 서북방면 무한천으로 흘러 예당저수지를 거치고 삽교천으로, 또 삽교호를 통해 서해바다로 들어가는 긴 여정을 거치기에, 이러한 자연 환경요인에 의해 보령과 청양의 충청도 특유의 느림 정도가 다르다고도 한다.

 그러나, 오서산을 중심축으로 할 때 청라, 청소, 광천, 장곡, 화성 사람들은  하나의 공통적인 지정학적 환경에 기대어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향상 오서산을 바라보며 삶을 영위했기에, 예전부터 오서산

자락에 기대어 살아왔던 민초들의 정서는 공통적인 요소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채제공(蔡濟恭) 선생은 1720년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나 1799년 몰하였다. 그 당시에 청양의 화성도 홍주 관할이었기에 대부분의 약력에는 홍성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는 실정인데, 원 생가터는 화성면 구재리 27-2번지 부분의 대나무숲 부근일 것이라고 그 지역 후손들은 추측하고 있을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채제공(蔡濟恭)의 본관은 평강,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 번옹(樊翁)으로 1735년(영조11)에 15세로 향시에 급제하여 정계에 입문을 하여 1788년 69세에 정조의 명에 의해 우의정에 제수되었다. 1793년 영의정에 제수되면서 화성성역축성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채제공은 영정조시대 몰락해 가는 남인 계보의 중심인물로 성호 이익 선생의 실학을 잇는 줄기에 그가 소중하게 여겼던 젊은 실학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해 주는데 큰 역활을 하였다.이것은 채제공의 가계 혼인관계를 보면 극명하게 나타난다.

 채제공의 작은할아버지는 사위로 여주인 성호 이익선생의 아들 이맹휴를 사위로 삼았으며, 채제공의 작은 아들 채홍근은 나주인 정재원의 서녀(정약용의 누이)를 부인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러하듯 채제공은 서울 경기지역의 남인계열 중심인물로 활동할 수 있는 큰 배경이 되는데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와 관련되어 유배될 처지에 있을 때, 채제공은 그의 고향에 있는 금정찰방으로 잠시 피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준 까닭이다.

 

 구재리 생가터를 찾아 보던 중 그곳에 살고 있는 채제공의 후손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의 웃대 어른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 채제공 할아버지께서 관직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오면서 수원 화성성의 지역명을 따와 이곳에 화성과 비봉, 남양 등의 지명을 차용하여 사용하여 지금의 이곳 지명이 되었다.' 라고 전해진다고 했다.

 그럴수도 있겠다 생각이 되지만 남양면이란 지명이 사양면에서 근래에 변경된 점을 생각해보면 그저 구전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보령의 청라동 의평리 새터에는 이곳으로 이주한 평강채씨의 집성촌이 근래까지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이들이 떠나고 장골로 넘어가는 가느실 언덕 양지쪽으로 선산이 꾸며저 있다.

 

 

 

 

2. 상의사(尙義祀)

 

    * 지정 ; 청양군 향토유적 제18호(2018년 1월 12일)

    * 위치 ;  청양군 화성면 무한로 226-120 (화성중학교 뒷산)

 

   상의사는 영,정조 시대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번암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영당이다. 조선 후기 문신인 류이좌(1763 ~1837) 와 후손이 1824년(순조24)에 채제공의 고향인 지금의 자리에 영당을 세우고 영정을 모셨다. 한동안 건물의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허물어졌는데 1989년에 영정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영당을 재건하였다.영정은 2006년 보물 제1477-2호로 승격되었다.

 상의사는 총 3동의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외삼문을 들어서면 안마당 왼쪽에 채제공의 문집 중 하나인 '번암집'을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이 있고, 오른쪽에는 학습 공간인 경모제가 있다. 안마당을 지나 계단으로 오르면 영당이 자리하고 있다.(천장 안내판 참조)

 

3. 채제공 선생 영정 (蔡濟恭 先生 影幀)                                

 

    * 지정 ; 보물 제1477-2호(2006년 12월 29일)

    * 위치 ; 청양군 화성면 무한로 226-120 (화성중학교 뒷산)

 

 채제공 선생이 64세일 때 도화서 화원 이명기(李命基)가 그린 초상화이다.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오량금관(오梁金冠)을 쓰고 관리가 조정에서 입는 의복인 붉은 조복을 입었으며,홀을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선생의 본관은 평강, 호는 번암,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 문과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올랐다. 관직에 있으면서 개혁의 필요성은 인식하였으나 제도의 개혁보다는 운영의 개선을 강조하여 중간 수탈과 부가세 폐단을 제거 등 국가 재정 부족의 타개를 급선무로 생각하였다. 또한 사회 안정을 위해 사족 우위의 신분 질서와 적자와 서자의 구별을 엄격한 의리로서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정통 성리학의 견해를 유지하면서도 포용적인 사상 정책을 전개하였고, 문장과 시에 능하여 조정의 편찬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하였다. 순조때 유태좌가 청양에 영각을 세웠고, 묘소는 경기도 용인에 있다.(현장 안내판 참조)

 

    @ 상의사 입구 홍살문

  @ 외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