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가 주인 되어 뛰노는 골짜기
천수답에 물꼬를 대러 온 농부의
발길에 놀라
덤불 속으로 숨어든다.
새파란 하늘이
쨍그랑 소리 내며 깨질 듯
반짝이며 눈에 들어온
사금파리 한 조각
오래전 어느 장인의
혼과 손길이 묻어 있는 지
사기막골
이젠 이 골짜기
지명도 사그라져
불러주고 들어주는 이 없지만,
고라니 발바닥에
사금파리 비췻빛 어리겠지
멧돼지의 콧잔등엔
옛 도공의 혼은 묻어나겠지.
* 사기막골 - 보령시 청라면 의평리 갬발 저수지 위쪽의 옛 지명으로
사기를 굽던 가마가 있었다는 골짜기.
* 문학지 '작가와문학 가을겨울호 2020' 기고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