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바람에 불밝히며 작업장에 들어서니...
일기예보의 예측대로 하늘이 무거워지며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다들 방사능이다, 요오드다, 세슘이다 떠들어 대지만, 하루벌어 하루를 사는 노동자
들에겐 그것도 사치인듯 싶습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으면 차라리 교통비 안들이고 작업장에 나오지나 않았을 터인데
막 시작하려 작업복 갈아입고 망치질 한번 할때 내리는 비는 그들에겐 참 못된 비가
됩니다.
하늘 바라보던 일흔넘은 영감님께 농삼아 "비도 온다고 했는데 뭐할려고 일찍 나오셨
습니까?" 하고 물어보니 "손주놈 장난감을 사주려 하는데 그놈이 워낙 장남감을 잘부숴
정신 없습니다" 하며 담배한대 빨더니 입안 가득한 연기를 하늘을 향해 후욱 불어낸다.
내가 농담으로 "영감님 손주는 할아버지 닮아 망치질하듯 장남감을 잘 부숴대는 모양이
구려" 하니 허허 웃어댄다.
봄비 덕분에 작업을 접고 주변을 돌아다 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주택가 주변의 공터엔 노부부들이 나와 부슬비속에서도 밭을 일구고, 둔덕을 만들고.
비닐을 덮으며 무엇인가를 파종 합니다.
도로옆에 줄지어 심어놓은 울타리의 개나리도 봉긋한 처녀가슴 처럼 부풀어 올라
오늘 낼 노오란 치마처럼 펼쳐질것 같습니다.
산자락 밑의 풀섶에는 제법 쑥들이 많이 솟아 올라 있구요...
봄은 이렇게 우리가 일상의 삶에 쫏기며 살아가는 중에도 무의식속에 우리 옆에 와 있었네요.
몇일후 개나리가 노오란 치마를 펼칠때면 진달래가 분홍 저고리처럼 펼쳐지겠지요?
계절은 부족함이 없이 순리대로 순환되는데, 우리네 인생은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면서
어디까지 쫏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문득 어느친구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내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것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이다.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께
행복을 달라고 기도를 한다"고 ...
하지만, 일이 있다고 행복한 것일까요???
환갑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도 파랑새의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를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힘들고 지치는 일 속에서도 조금의 여유를 갖고, 나 자신을 위한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새벽이면 일터로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머슴 아버지로 부터 탈피하고 싶습니다.
누구에게서나의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서 잠시만이라도 탈피하고 싶습니다.
봄비...
내 가슴속에도 봄비가 촉촉히 내렸으면 합니다.
요오드가 섞여 있어도 좋고, 음헌 바람이 섞여 있어도 좋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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