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만에 처음으로 샤워를 하였다.
아들놈과 동네 목욕탕에 들어가 온탕과 사우너를 들락거리며 땀을 빼고도 싶었지만,
지엄하신 의사선생의 당부말씀이 혹여 신상에 큰 불이익이 돌아올지 몰라 그만두고
샤워기 밑에서 따뜻한 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긋한 기분으로 물줄기를 받아들였다.
비누거품을 내어 온몸 구석구석을 씻어내리니 이렇게 시원하고 개운할수가 없다.
어렵게 살던시절 한달에 한번 동네목욕탕에 들어가 한참동안 온탕에 들어가 때를 불
리고 거칠은 때수건으로 몸뚱아리를 사정없이 밀어내던 기억이 새삼 생각난다.
문명의 덕을 받아서인지 보름동안 몸뚱아리에 물을 대지못하고 그냥 얼굴과 발바닥만
씻다보니 왜 그리 몸이 근질거리고 찌부드한지 불쾌하기까지도 하던 참이었다.
한참동안 샤워기 밑에서 때를 불리고 욕탕 프라스틱의자에 앉아 때미는 작업에 열중
하는데 그동안 얼마나 켜켜로 쌓였는지 국수가락 못지않게 밀려 나온다.
아들놈에게 등어리에 난 수술부위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고 밀어 달래니 이렇게
시원 할수가 없다.
다시 한번 샤워기 밑으로가 물의 소중함과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욕탕에 들어서면서 몸뚱아리의 근수를 달아보니 3Kg이나 늘어나 있었다.
병상에서 누워 있었고, 신체가 부실해져서 설마 몸무게가 늘지는 않았으려니 했는데
이건 잘먹고 잘놀고 뒹굴거렸다는 말이 되는것이 아닌가???
집으로 돌아와 등산화에 추리닝을 갈아입고 뒷산 산책길에 나섰다.
어제 내린 백설이 나뭇가지에 걸려 설화가 되고, 응달엔 제법 뽀드득 소리날 정도로
쌓여있기도 하고, 솔잎과 가랑잎위로도 쌀가루 뿌린듯한 그림을 그려놓기도 했다.
봄이 옴을 시샘하는 찬바람인지 콧잔등이가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뒷산 약수터의 산책길을 빙 둘러 한바퀴 돌면 꼭 한시간이 걸리는데, 이젠 20년동안
이곳을 살면서 오르내려서인지 소나무군락과 갈참나무군락, 조릿대 스석거리는 소리,
단풍나무 군락과 밤나무 군락들의 나무 하나 하나가 눈에 익는다.
아장거리며 숲길산책하던 아들놈과 딸년이 이젠 성인이 다 되었으니, 아마 그때 심은
나무들도 밑둥지가 제법 클것이리라...
골목길로 내려 오면서 엊그제 주민총회로 조합이 결성되어 재개발사업이 이젠 촉진될
것이라는 주민들의 염원이 이루어진다고 좋아하는 부류와 이젠 오를대로 오른 집값에
주민 부담금이 커진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옥신각신하며 난장법석이된 총회를 지켜
보며 많은 생각에 젖어들게 하였다.
어쨌든 조만간에 이 정든 골목길은 없어질것이고 영상단지타운이라는 고급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 이곳을 쫒겨날수 밖에 없는 서민들이 생겨날것이고, 또한 용산처럼 회오리
바람도 불어 닥칠것이 뻔하다.
주택단지로 70년대초엔 도시계획에 의해서 반듯한 대지를 조성하였던 단지였었건만
이젠 노후화되고 비좁은 골목길로 슬럼가가 되어 간다고 고층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니
아쉽기만 하다.
유럽의 관문 프랑크푸르트의 하늘에서 내려보는 시내외곽은 넓직한 정원을 가진 주택
들로 붉은기와 지붕이 아름답게 보이던데 우린 왜 이리 높고 집안이 넓은 평수의 거실
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늙어지면 청소하기 힘들고 귀찮아질 넓은평수의 거실보다는 풀한포기 심을수있고
꽃한송이 흙냄새 맡으며 심을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유의 척도가 집값에 의해 정해지는 우리네 삶이 무엇인가 잘못된것이라고 밑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낼부터 출근길에 들어서야 하니 이젠 또 열심히 뛰어가야 할것이다.
300평의 자그마한 내 노후의 안락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짧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운 도전... (0) | 2009.02.27 |
---|---|
봄이 오는 소리... (0) | 2009.02.21 |
[스크랩] 놀멍 쉬멍 보멍 홈피개론(槪論)... (0) | 2009.02.13 |
청량리 중량교 가요... (0) | 2009.02.02 |
잡념.... (0) | 2009.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