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다리티재에 대하여...
고등학교 여름방학때....
지금은 고인이 된 당숙할머니와 함께 청양땅을 가느라고
월티재에 보름달이 훤하게 오르자 익낭에서 다리티로 향하였다.
상중저수지 물위로 둥근 보름달의 너울거림을 바라보며,
달빛 어스름한 고갯길을 걸으면서 그 분에게서 우리 가족사의
한 부분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제시대의 수탈을 피해 찰흙같은 이 고개를 아버지와 삼촌을
걸리고 업히어서 부여 외산면에서 청라와의 연결 고리가 되었슴을
다리티재를 넘어 구봉광산 개울따라 금정리까지의 여행이 끝날때까지
밤이 새도록 이어졌다.
이제는 그분은 가시고,내 기억속에서만 고이 간직되어 그분과 나만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려선 그 동네에 큰 다리가 있어서 다리티라 불리는 줄 알았었건만,
나중에 금오신화의 김시습을 만나며, 그곳이 달이 뜨는 언덕이라 하여
다리티재라 이름함을 알았다.
B)은선동에 대하여...
유약칠 하여 구은 항아리가 마당에 그득하고
흙가마에선 하얀연기가 몇날몇일이고 뿜어져 나왔다.
길바닥엔 깨진 항아리 조각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내 딛는 발걸음마다 조심스런 짤그락 소리가 울린다.
수백년 묵었을 아름드리 소나무가
바위틈을 휘집으며 흐르는 개울가에 드리워졌고
그 바위들 사이 웅덩이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
발가벗고 미역감는 풍경에 나는 그곳을 자주 �O아 갔었다.
식목일날 오리나무 심으러 갈때나
단체 소풍으로 그곳을 다녀 올때에도
그 곳이 좋아 해질녘까지 그 곳에 있었다.
청라 고을에 신선이 살던곳은 음현리와 이곳이라는데
나는 이곳을 더 좋아했다.
지금은 밤나무밭으로 변하였는지,양계장으로 변하였는지,
양송이 농장으로 변하였는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곳에 갈수 있건만,
내 추억속의 풍경과 너무나 달라져 있을것 같은 두려움에
내 마누라와 내 자식과 해마다 여름이면
상중 저수지에서의 야영을 즐기건만
아직까지도 그곳을 가보지 못한다...
2005.09.10.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