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를 둘러메고 벌판을 뛰어가다 숨이 차서 북쪽 하늘을 바라다보면
구름위로 솟아오른 오서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느집이나 등잔불을 켜던 시절이라 대돗병에 새끼줄로 옮아매어
원무루 석유집에서 사오는 심부름을 이따금 하던때,
오서산에 큰불이나 몇날몇일 밤낮 없이 타오르는 풍경을
갬발 저수지 방죽에 올라 구경 하면서, 지서 의용소방대장 아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오서산 정상에는 큰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서 석유가 계속 흘러 나오는
바람에 산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 오르는 것이라 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올라갔다 온 아이가 없었기에
그 말을 믿어야 했다.
갬발 저수지가 바짝 마르고,논 바닥이 타들어가면,
어른들은 대나무 꼭대기에 청솔가지를 묶어 들고
갖가지 만장기를 세우며 농악대를 앞 세우고,
마을 집집마다 돌면서 북을치고 나발을 불었다.
농악대는 원무루를 지나 당안 백토고개를 넘어
용이 살고 있다하는 옥계의 어느 개울 웅덩이까지
아이들을 꼬리에 달고 그곳까지의 행군이 이어졌다.
어른들은 굿을 하면서 항아리에 그 물을 담았다.
그 물은 우리동네 앞 동산(문행기)에 제를 지내면서
물을 뿌리면, 몇일후 영낙 없이 단비가 내려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때와 기우제때 딱 두번의 옥계를 보았지만
청라 고을이면서도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있지 않음은
백토 고개에 의하여 어린 시절을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언젠가 그 고을 사람을 우연이 만나 이야길 해보니,
그쪽 사람들의 이상향은 이쪽 동네였고,
우리는 매일 오서산의 정기를 숨 쉬며 살아 온 것이다....
2005.09.11.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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