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산

뒤주대왕을 생각하며...

푸른나귀 2007. 6. 20. 19:26


  마의태자,최영장군,단종,사도세자....
  역사의 흐름속에서 타인에 의하여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한많은 생을
  마감했기에 지금도 무속인들 사이엔 몸신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모른다.
  커다란 작두위에 버선발로 춤을 출수있는 무속인들의 혼속에는
  우리가 알지못하는 신끼가 들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어려선 동네에 한번 굿판이라도 벌어지면 꽹가리소리에 북소리가
  가슴까지도 두근거리게하고,무속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가
  저승으로 가지못한 한맺힌 불귀의 목소리로 들리었고,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는 대나뭇가지는 한�셜� 영혼의 몸짓이었다.
  지금은 볼래야 볼수도 없는 그림이 되고 말았지만....


  조선 중후기 영정조시대엔 탕평책을 써서 고질적인 파당을 줄이고,
  문명의 꽃을 피웠다고는 하나 그시대에서도 사도세자와 같은 비극이
  있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무수리의 뱃속으로 잉태되어 왕위에 오른 영조대왕은 많은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권력의 울타리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뒤주속에 가두어 한점의 햇빛도,한모금의 물도 베풀지 않고 굶기어
  죽도록 하였으니 누가 옳고 그름을 평하기전에 그것은 비극이다.

 
  그의 손자 정조는 아비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어
  화성에 궁을 짓고,릉을 옮기고 하여 자주 화성 행궁을 하였으니
  효심이 깊은 왕으로 기억되어지고 있다.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실천한 화성은 정조의 기존 기득권층의 권력으로부터
  세력을 분산시키려는 도성의 천도를 생각하며 구상하였건만,
  이루지 못한 꿈이 되어 버린것으로  지금의 수도권 이전과 어쩌면
  흡사하니 역사는 돌고 도는것이란 말이 수긍이 된다.


   병점전철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용주사옆 융건릉을 휘돌아 본다면 요즈음같은 덥고 후덥지근한 날씨엔
   두어시간의 산책으로 마음을 맑게 할수있으니 좋지 않겠나???
   뒤주대왕과 정조대왕의 비각엔 총탄의 흔적도 있고,
   병아리같은 유치원 꼬마들은 이삼백년전의 한맺힌 울부짖음을 생각할수도
   없으련만, 즐거운 재잘거림속에 우리의 미래가 숨쉬고 있슴을 볼수있다.
   화성8경중 융건설경이 제1경이라는데
   여름날에 눈내린 능을 상상하며 푸른 잔디밭을 걸어보자!!!

 

                      ....2005.07.06.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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