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65

제35편 ; 심청각(백령 6)

1. 들어가며 '심청전'은 조선 후기에 흥행했던 판소리가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변형되어 독자들에게 크게 흥행한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 12마당에는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적벽가 등이 있는데 이들 작품은 대체로 설화가 판소리로 진행되고, 그 판소리가 소설화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학계는 주장한다. 판소리 사설이 유식한 문자와 상스럽고 발랄한 말이 적절하게 혼용함으로써 양반층과 하층민층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예술로 발전이 되었고, 충효와 권선징악의 유교적 가치와 윤회의 불교적 색채가 짙게 배여 소설로서도 크게 민중에게 호응을 받았다. 심청전에는 여러 이본들이 존재하며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판소리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창자에 의해 조금씩 윤색이 되고 각색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 과정 또한 ..

제34편 ; 용기포 등대해변(백령 5)

1. 들어가며 여객선을 타고 백령도에 들어서면서 용기포 선착장의 모습이 많이 변하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30년 전에 오가던 선착장은 구 선착장으로 어선들이 정박하는 항구로 변하였고, 용기포 신항이 더욱 크게 조성이되어 민간용과 군사용으로 확장 신설되어 운용중이었다. 구 선착장의 대피소 옆을 끼고 등대해변으로 향하는 숲길은 더위를 가려주는 울창한 수풀로 우거져있다. 용기포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등대를 끼고 돌아 넘어가면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용기포 해안에 들어선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 절벽에 파도에 휩쓸려 와르륵 소리를 내는 몽돌의 색상이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파도에 의해 깎겨 넓게 뚫린 해식 동굴에 들어서자 서늘하고 시원한 바람이 파도와 함께 밀려온다. 잠시 바위에 걸터..

제33편 ; 사곶천연비행장과 콩돌해안(백령 4)

1. 들어가며 바위가 부서져 돌이 되고, 돌이 부서져 모래가 된다는 동요가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무시된다면 간단한 이치 일텐데, 시간이라는 물리적 힘이 보태져서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곳이 사곶사빈과 콩돌해안이다. 백령도의 지질이 약 10억년 전에 퇴적되어 형성된 사암에서 강한 열과 압력으로 규암이라는 바위가 되었고, 그후 바람과 파도에 의해 풍화가 진행되면서 떨어져나가게 되는 윤회의 길로 들어선다. 떨어져 나간 돌들은 바닷속에서 파도에 의해 모서리가 깎기고 닳면서 콩돌로 변해 해변을 수놓게 되었으니 이것이 콩돌해안이다. 지금도 절벽에서 떨어진 돌들이 바닷속에서 깎기는 통증을 인고하느라 구르릉대며 울부짖는 듯 소리를 토해낸다. 그 콩돌이 가루가 되어 모래가 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인지 ..

제32편 ; 중화동 교회와 백령 천주교회(백령 3)

1. 들어가며 백령도는 3천여 가구에 약 오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한국동란 당시 이주한 황해도민과 원주민, 그리고 군복무하면서 정착한 다양한 형태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협정이 되어 3.8도선 이남의 해주, 장연 등이 북으로 귀속 되면서 서해 5도는 경기도 옹진군으로 편입 되었다가 인천광역시로 다시 편입이 되어 생활권이 인천으로 변하게 된다. 섬의 면적이 51Km2로 인천에서 228Km 떨어져 있지만, 황해도 장연과는 불과 17Km 떨어진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대체로 섬지역들은 어업을 주 산업으로 하나, 평야가 많고 물이 풍부한 백령도는 농업인구가 어업인구보다 약 세배나 많아 농업이 주업이며 식량 자급도는 섬 전체인구를 먹여살리고도 남아 육지로 내보내는 정도이다. 주민들의 종교 ..

제31편 ; 두무진 지질공원(백령 2)

1. 들어가며 두무진 항구에서 수시로 운항 중인 유람선을 탑승하면 약 40분 정도로 연화리 앞바다까지의 두무진 해안절경을 즐길 수 있다. 수 억년전에 생성된 지구의 나이테를 바라보면 인간의 나이테가 얼마나 무의미한 지를 느낄 수 있다. 새끼를 키우기 위해 바위 주변을 맴도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뱃고동 소리보다 요란하고, 온종일 자맥질로 물고기를 잡아대던 가마우지들의 휴식도 마냥 한가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람선 선장의 안내방송에 귀 기울여 보지만 수 많은 바위에 얽혀있는 전설과 이야깃거리는 눈이 먼저 풍광에 빠져들어 윙윙거리는 잡음으로만 생각들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창작할 수 없는 조각품을 바람과 파도에 의해 자연은 사람이 누리지 못하는 시간이라는 도구로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다. 인..

제30편 ; 두무진 비경길 (백령 1)

1. 들어가며 북쪽땅을 장기집권하던 독재자가 사망하던 날(1993.07.08), 서울은 라면과 생수가 파동이 날 정도로 혼란에 휩쌓였었다. 신혼초임에도 불구하고 백령도로 출장을 와 서너 달 근무 중이었는데, 마눌님은 돈도 필요없으니 빨리 들어오라며,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며 전화기에 불똥이 떨어진 듯 애원하였었다. 지금은 장성하여 그 시절의 아들처럼 손주를 키우고 있는 아들내외를 바라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꼭 30년 전의 일이며, 한 번 그곳에 다녀오리라 마음을 먹고 연안부두에서 대기도 하여 보았지만 날씨 탓에 불발로 끝나길 수 차례 였다. 이번에 답사할 기회가 다시 생겨 불안한 마음을 한켠에 두고 연안부두에 도착하였는데 다행히 순조로운 답사길이 열리게 되었다. 30 년을 지내며 이따금 눈에..

제29편 ; 어청도 봉수대 (군산 4)

1. 들어가며 조선이 건국 되면서 중앙권력을 강화하고 지방행정을 원활이 하고자 역참과 봉수제도를 정비하고 강화하였다. 조선팔도의 변방 네 곳에서 출발하는 봉수로는 도성으로 위급함을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통신수단으로 한동안 자리매김을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봉수대의 관리가 소홀해지며 효능이 떨어지자 폐기하게 된다. 어청도의 봉수대는 서해로 침범하는 외적의 동태를 어청도에 알리고, 어청도 봉수대는 녹도를 경유하여, 녹도, 원산도, 망해정을 연결하여 충청수영으로 전달되는 지방관의 관할하에 설치되었던 권설봉수였다. 섬주민들에게 봉수대를 설치하고, 외적을 감시하며 관리의 의무 등을 부여하면서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음에 애초에 의도한 대로 역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날씨가 궂으면 봉수의 ..

제28편 ; 어청도 초등학교 (군산 3)

1.들어가며 해안 산책길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등대길로 접어들었다. 섬주민들의 치안과 건강을 지키는 파출소와 보건소를 지나는 길에 약간 높은 지대에 초등학교 건물이 있다. 사람들이 사랑나무라 부르고 있는 향나무 두 그루가 마치 연리지처럼 손을 맞잡고 있는 형태로 시멘트 계단 위로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악동들이 뛰쳐 나올 듯하여 멈칫 기다려보지만 조용하다. 열댓 계단을 올라서니 사랑나무에 머리가 부딪힐 것 같다. 목을 움추리며 운동장에 들어서니 잡초가 무성하고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기구도 움직임이 없다. 풀밭이 된 운동장을 지나 교사동 현관으로 가보니 붉은 글씨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본교는 2021년 3월 1일자 휴(폐)교 되어 모든 재산권(토지,시설물,수목 등)은..

제27편 ; 어청도 치동묘 (군산 2)

1. 들어가며 전횡장군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섬이 서해안에는 다수 있다. 특히 주변의 섬 외연도에는 전횡장군의 당집이 있으며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위한 제를 성대하게 모시고 있다. ( 보령의 흔적따라 154편, 138편 참조) 비운의 영웅인 전횡장군을 신으로 승격 시킴으로서 날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섬사람들에겐 불안을 해소시키고, 믿음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같은 믿음이 섬 특유의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게 되었고, 척박한 섬 살림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곳 치동묘는 외연도의 당집과는 달리 마을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나즈막한 돌담으로 둘러처져 있고, 흙을 치대서 자연석을 아기자기하게 사람 키 정도로 쌓은 모습이 정겹다. 태극문양이 그려진 외문의 빗장..

제26편 ; 어청도 구불길 (군산1)

1. 들어가며 보통사람들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어청도(於靑島)가 행정구역이 바뀐 것을 금산군과의 빅딜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어청도가 충청수영의 관할의 홍주목에서 1901년 오천군으로 이전이 되고, 1914년에 전라북도 옥구(현 군산)로 이전된 것이며, 금산이 충청도로 행정구역이 바뀐 것은 한참 후인 1963년의 일이니 전혀 빅딜과는 상관이 없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곡류와 광물, 수산물 등의 일본 반출을 위한 수탈기지로 발전을 거듭하는데, 어청도는 지형이 U자형으로 깊숙한 항구를 가지고 있어, 일본인들에 의해 고래를 포획하는 전진기지로 이용되며 군산과 가깝기에 일본인에 의해 행정편의를 위하여 충청권에서 전북권으로 행정구역을 바꾼 것이다. 전라도쪽에서 생산된 곡물을 운반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