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흔적따라 184

제163편 ;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제

1, 들어가며 음력 시월이 되면 풍성한 가을을 맞이해 각 가문마다 조상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흩어져 살던 후손들이 선산에 모여 시제를 지내는 아름다운 풍속을 이어가고 있다. 보령 땅 청소면에 위치한 백야 김좌진장군의 묘소에서도 지자체의 주최로 단체장들과 후손들,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모여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김좌진 장군이 만주에서 1920년 10월 20일부터 10월 26일까지 일본군을 포위하고 혁혁하게 물리쳐 승리를 이끌었던 청산리대첩이 벌어진 시기에 맞춰 그 얼을 되새기며 매년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김좌진 장군은 홍성의 갈산면 출신으로 멀리 만주땅에서 아쉽게도 암살되어 산화 되었지만, 그의 부인이 힘들게 유골을 수습하여 홍성으로 옮겨 안치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후손들에 의해 ..

제162편 ; 독립지사 동양자 김광제(東養子 金光濟)

1, 들어가며 동대 사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가로변 공원에 서 있는 황동색 동상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서 진행 하였고, 대구 등의 경상도 지역에서 민족계몽운동을 추진하며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 전념을 다하여 일생을 바친 우리고장 웅천 평리 출신의 독립지사 동양자(東洋子) 김광제(金光濟) 선생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우리 지역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보령에서의 활동이 미약해서인지 지역민들은 김광제 선생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지, 시민들은 무심하게 동상 앞을 스쳐 지나간다. 김광제는 부친 김상하(金商夏), 모친 풍천임씨의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명은 홍제(弘濟), 호는 동양자(東洋子), 시호는 석람(石藍), 자는 덕재(德在)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17대조인..

제161편 ; '보령의 섬' 기획 특별전

1, 들어가며 보령박물관에서 기획특별전으로 2022년 8월 20일부터 2023년 2월 28일까지 '보령의 섬'이 기획전시실 1관에서 전시된다. 보령에는 유인도 15개소, 무인도 75개소, 미등록 무인도가 58개소로 도합 145개소의 섬이 존재한다. 현재 보령의 섬에는 유인도 15곳에는 1,500여 가구의 3,000여명 주민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대표적 도서로는 근래 연육교와 터널로 연결된 원산도, 서해의 비경 외연도, 호도, 녹도, 화살촉 같은 지형의 삽시도, 고대도, 장고도, 효자도, 불모도, 월도, 육도 등이 있다. 보령지역에 사람이 살았었다는 증거로 이지역에서 출토된 구석기 유물들로 추정하여 대략 5만년 전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서해바다가 빙하기에는 중국대륙과 연결된 평편한 내륙이었고, 차츰 간..

제160편 ; 쇳개와 해소포(蟹所浦)

1, 들어가며 대천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하천은 성태산을 발원지로 한 대천천과 오서산을 발원치로 하는 옥계천이 합류하여 흐르는 냇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대천천의 이름이 유수지역의 지명을 따서 청라수라 불려졌음이 천휴당 이몽규의 행장비에 기록되어 있음으로 알 수 있다. 60년 대에만 해도 대천역 서쪽은 넓은 농경지가 있었으며 논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대천천을 따라 뚝방이 이어져 있었고, 그 아래로 갈대숲 사이로 바닷물이 들락날락거리고 모래를 퍼 나르던 바지선(드럼통으로 엮어서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만든 배)들이 오가던 모습이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일제강점기가 되어 일본인들은 수심이 얕아 그때까지 이용되던 해소포구를 버리고 현재의 대천어항으로 위치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조선배가 바닥이 평편한..

제159편 ; 마한의 만로국(萬盧國)

1. 들어가며 보령시청 홈페이지에서 보령의 연혁을 살펴보면 삼한시대 마한 만로국(萬盧國, 삼한의 78개 부족국가 형성기, 삼국지한전 참고)으로 부터 시작하고 있다. 보령의 북부지역은 백제 때 신촌현(新村縣), 신라 때에 신읍현(新邑縣), 고려시대에 보령현(保寧縣)으로 변환이 있었고, 남부지역은 백제 때 사포현(寺浦縣), 신라 때에 소포현(蘇浦縣), 고려시대에는 가림현(架林縣)으로 지명이 바뀌다가 두 현이 일제강점기 통합이 되어 지금의 보령시로 변경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한 만로국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궁금증으로 남아 있었는데, 마침 「우리가 몰랐던 마한」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미약하나마 갈증을 조금 풀게 되었다. 저자는 마한(馬韓)에 대한 기록은 3세기 후엽 서진(西晉)의 진수(陳壽)가 편찬한 「삼국..

제158편 ; 용두마을 용굴과 참샘터

1. 들어가며 독살을 보기 위해 용두마을 해안도로에 들어서자 도로 옆 해안가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살펴보니 참샘터의 안내판이다. 바닷가에는 흔히 민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있기 마련인데, 갯일을 하는 어민에게는 갈증을 씻어내는 달콤함을 주기에 중요하게 생각을 하였다. 3년 전 가을, 삽시도를 답사할 적에 바위 틈으로 솟아 나오는 샘으로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나타나는 샘으로 물망터라는 이름을 가진 샘을 찾아 헤매었던 기억이 났다. 이처럼 바닷가에서 일하는 어민들에게는 바닷가에 솟아나는 민물 샘은 힘든일을 잠시 잊고 다시 고된일에 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편리하게 생수를 보관하고 지참을 할 수 있으니 샘의 중요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사용하지 않는 샘터에 사람이 찾을리 없..

제157편 ; 용두마을 독살(3)

1. 들어가며 독산리 독살을 답사하려 남포방조제를 지나 월전리로 들어서며 우측으로 용두마을 해안가에 눈길이 끌렸다. 전에 수없이 지나가던 길이었지만 해안가에 독살이 있슴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관심을 가진만큼 보인다더니 그런가보다. 하여 독산리 독살을 답사한 후, 되돌아오는 길에 용두마을로 들어섰다. 남포방조제의 관광명소 죽도가 가까이 보이는 해안가에, 용두해수욕장의 서남방향으로 작은 포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한변의 길이가 30여 m 정도의 V자형 독살이 설치되어 있다. 가까이 가보니 예전에 있었던 독살을 장비를 들여 재설치한 듯 바위의 형태가 파쇄석으로 근처의 바위와는 재질이 확연하게 다르고 또한 재질의 크기도 인력으로는 옮기기 힘들 정도로 크다. 독살의 윗부분의 너비는 약 2~3m 정도로 평..

제156편 ; 독산리 독살(2)

1. 들어가며 한 달전에 대천항의 죽방렴을 다녀온 후, 제대로 된 석방렴(石防廉)을 보고 싶어서 간조대를 맞춰 독산리로 향하였다. 대나무나 싸릿대로 엮는 죽방렴의 형태가 철 기둥에 그물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설치방법의 변화를 가져왔듯이 석방렴 또한 그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추측하면서 무창포 해수욕장에 다다랐다. 독산리는 무창포 해수욕장의 끄트머리에서 조금 지나 위치한 해변마을이다. 닭벼슬섬을 비롯한 몇 개의 무인도가 산재하여 있고, 이 무인도에서 떨쳐 나온 바위들이 쪼개어져 해변에는 바위와 돌들이 깔려있다. 이 돌들을 이용하여 옛 사람들은 해안에 돌담처럼 쌓아 고기를 잡는 독살을 만들어 어업활동을 하였다. 바다 멀리 나갈 어선도 필요 없고, 하루에 두 번 조석 간만의 차로 밀물 때 밀려들어온 어류들을 썰물..

제155편 ;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보령땅

1. 들어가며 직접 전국을 걸어 다니면서 대동여지도를 작성한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1866)는 이전까지 제대로 된 우리나라의 지도가 정확하지 않음을 아쉬워 하면서, 실학적 고증으로 심혈을 기울여 각 고을 군현의 경계를 확실하게 표기하고, 여기에 덧붙여 산, 강, 섬 그리고 나루, 봉수, 성곽 등을 표시함과 동시에 지역 간의 거리까지 지도에 표기함으로 사용에 용이하도록 추구하고, 더불어 역사적인 사실까지 함께 수록하고자 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철종 12년(1862년)에 완성된 스물 두 장의 첩으로 작성되어 있는데, 이것을 펼치면 우리나라 전도가 되는 지도로 보물 제 850-1호로 문화재 지정이 되어 서울역사 박물관 및 성신여대 박물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대동여지도를 현대적 감각으로..

제154편 ; 외연도 상록수림과 당집

1. 들어가며 국문학의 한 갈래에는 구비문학이 자리잡고 있다. 구비문학은 문자로 기록되기도 전에 입에서 입으로 화술자에 의하여 전달되던 신화, 전설, 민담의 형식으로 옛날 이야기처럼 전해지던 문학이다. 신화는 건국신화나 창세기처럼 신과 인간 관계의 신성성을 가진 초월적 이야기를 말하며, 전설은 비범한 인물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내용으로 구체적 증거물과 함께 이루어진 이야기를 말하고, 민담은 요즘의 개그 형식의 화자와 청자가 쉽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 평범하거나 미천한 인물이 행복하게 결말을 맺는 이야기를 말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외연도에도 무속신앙에 의해 무당들로부터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을 텐데 아쉽게도 알수 없고, 당주로 모시는 전횡장군의 전설과 김서방 바위와 같은 민담이 상록수림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