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외 유적지 탐방

제57편 ; 상가리 미륵불(예산 2)

푸른나귀 2024. 2. 1. 19:35

1. 들어가며

 

    덕산면 상가리는 남쪽으로 원효봉(해발 604.7m)과 서쪽엔 가야산(해발 678.2m)이 주봉을 이루고, 북으로 가면서 옥양봉(해발 621.2m)과 옥산으로 가는 고갯길을 내주고, 북동쪽으로 서원산(해발 473.2m)으로 산맥이 이어지며 남동쪽으로 덕산으로 통하는 길목을 내주는 형태의 지형을 가지고 있어 예전부터 명당자리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아버지묘를 이곳에 쓰고자 가야사라는 절을 폐사시켰다는 역사적 사실과, 병인박해 때 독일인인 오페르트가 1868년 덕산 구만포에 상륙하여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발각되어 달아난 사건 때문에 대원군이 더욱 쇄국정책을 쓰게 된 원인이 되었던 근원지이기도 하다.

 

 상가리 미륵불이 가야사 경내에 위치하다가 폐철 당시 이곳으로 옮겨졌는지, 혹은 원래부터 고갯마루를 바라보며 동구밖에 세워졌던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중생을 보살피는 부처의 뜻을 생각하면 산고갯길을 바라다 보고있다는 것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시대 배불숭유 정책에 의해 남연군 묘를 바라다보지 못하도록 일부러 돌려놓지 않았을까?

 대체로 불신의 크기는 3.5m정도이며, 어깨너비 1.0m정도, 몸통 두께 0.5m정도로 가늠 되는 4~5등신불이다.

 운문(雲紋) 위에 작은 부처상을 돌출 조각한 보관을 쓰고있는 얼굴은 불신에 비해 커 보이고, 보통의 미륵불처럼 갓을 쒸웠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가늘게 뜬 눈과 작은 입에 비해 코는 크게 돌출되어 있고 얼굴이 도톰하게 보이며, 목 부분은 분리 되었었는지 보수한 흔적이 남아있다. 귀는 양 어깨까지 길게 늘어트려져 조각되어 있는데 홰손이 심각하다.  

 목에는 삼도가 확연하게 음각 되어 있고, 몸통을 감싸고 있는 법의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발 아래까지 6줄의 선으로 표현 하였다. 양팔을 몸통에 붙이고 오른손을 가슴 높이로 올려 설법인(說法印)을 표현하고, 왼손은 펴서 공손하게 배 위에 얹어있다. 오른쪽 팔과 몸통 사이의 부분은 인위적으로 패인 흔적이 남아있다.

 하체의 오른발이 발등 부분에서 파손이 이루어졌고, 왼발의 형태는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측면으로도 법의의 실선이 조각되었고, 팔뚝도 볼록하게 돌출시켜 볼륨감을 갖게 하는데 이는 판재의 화강암이 아니라 두께감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뒤쪽으로는 조각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상가리 미륵불은 원래 관음보살상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민중들에게는 미륵불로 모셔진 모양새를 나타낸다. 현장 안내판에 미륵의 코를 갉아 먹던 전설을 기록해 놓고, 미륵의 코를 보수하게 된 흔적의 사유로 설명을 하였다. 

 민간 신앙의 대상인 미륵의 코와 눈을 파서 물에 타먹으면 임신과 광명을 찾을 수 있다는 전설의 증거가 되기엔 부족하다. 

 

 

2. 참고자료

      

       @ 위치 ;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25번지

       @ 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 182호(1984.05.17)

 

  ◎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돌기둥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미륵불로 불리지만 형태로 볼 때 관세음보살을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머리는풀과 꽃무늬로 장식한 화려한 관(冠)을 쓰고 있으며, 관의 가운데에는 작은 부처가 조각되어 있다. 얼굴이 길쭉하며 양 볼이 두툼하게 살이 올라 있다. 왼쪽 어깨를 감싸며 입은 옷은 선으로 새겼으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고 있다. 양팔은 몸에 붙인 채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었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다.

 이 불상에 표현된 양식은 고려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이런 유형의 불상은 충청도 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예산군 홈페이지 설명 발췌)

  ◎ 남연군묘(南延君墓)에서 동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골짜기에 북향하고 있는 불상이다. 

  가야사(伽倻寺)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대원군(大院君)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묘를 쓰자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는 설도 있고, 북쪽 계곡으로부터 쳐들어오는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북향하고 있다는 설도 전해진다.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중앙에 화불(化佛)이 장식된 것으로 보아 실제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임을 알 수 있다.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눈은 반쯤 뜨고 있다. 코는 보수한 흔적이 있는데, 미륵불의 코를 떼어가면 아기를 못 갖는 아낙이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 코를 떼어갔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법의(法衣)는 왼쪽만 걸친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선(線)으로 새겼다. 미륵불은 투박하고 거칠게 조성된 듯하나 나름대로 볼륨이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양팔을 몸에 붙인 채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은 손바닥을 배에 붙이고 있는데, 이러한 양식을 고려시대에 충청지방에서 널리 유행한 것이다.(현장 안내판 참조)

   

   @ 상가리 미륵불의 전면 전경

   @ 좌측면 전경

   @ 후면 전경

   @ 우측면 전경

   @ 미륵불의 전면 상부 근접촬영

   @ 미륵불의 하부 몸통 근접촬영

   @ 상가리 미륵불 현장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