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의 산

보령의 산(제32편 ; 미산 옥녀봉)

푸른나귀 2022. 3. 21. 16:16

1. 들어가며

 

    보령의 미산면과 부여의 옥산면을 경계로 하는 옥녀봉은 해발 367.9m로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소가 누워있는 것처럼 나지막한 지형으로 이루어졌다. 옥현리 모과나무골과 남은재골에서 시작하는 등산로가 있는데, 남은재골 시내버스 종점에 차를 세우고 들머리인 비닐하우스 옆 밤나무 단지로 들어섰다. 동네 개들이 외지인을 경계하는지 꽤나 짖어댄다. 밤나무 단지의 위쪽으로 향하니 꽤나 커다란 발자욱이 엊그제 내린 비로 도장을 찍듯 흔적을 남겼다. 주변을 주둥이로 헤집어 놓은 폼이 멧돼지가 시시때때로 마을까지 내려오는 모양이다.

 옥녀봉의 산자락을 감아도는 임도를 만났는데, 능선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보이질 않는다. 잠시 잡목이 덜 우거진 소나무밭을 개척산행 하여 등산로에 도달한다. 능선로에는 제법 산행객들이 다니는지 확연하게 길이 나 있다.

 능선 주변에 봄소식을 듣고 기지개를 켜는지 진달래가 꽃몽우리를 피우고 벌나비를 부르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능선길을 걸으며 주변에 시선을 둘러보기 적당하다.

 중간에 정자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이름이 옥진정이다. 현판을 보니 '亭'으로 쓰여 있는데, 가운데'진'은 한글이다. 진달래 동산을 말하는 듯 정자 앞에 시비가 세워 있는데, 김소월의 '진달래 꽃'이 각자 되어있다. 봄이오면 이 산도 진달래로 불타오르 듯이 만개 되나보다. 

 옥진정이 있는 250고지와 또 하나의 250고지를 지나니 옥녀봉의 정상이 나온다. 옥녀봉에도 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표지석 또한 설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등산로 들머리가 보령임에도 어쩐일인지 표지석도, 정자도, 등산로 정비도 모두가 부여에서 설치하였다. 부여군 보다 보령시가 재정적인 세가 더 클텐데하는 생각이 미치는데, 옛 고도(古都)인 부여가 문화적인 측면에서 국가로부터의 재정지원이 크지 않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산들이 지자체간의 경계에 있다면 서로 간에 협력하여, 산을 즐기는 산행인들과 지역민의 건강을 위해 갖가지 편의시설을 충분히 해주어야 한다.

 정상 표지석에 표시된 '옥산 옥녀봉'이란 힘찬 붓글씨를 보면서 왜 이산이 '옥산'이며, '미산'은 어디로 갔을까를 주저리게 된다. 이 생각 자체도 지역이기주의의 발로인가?

 

 @ 옥녀봉의 유래

    옛날 지금의 내대리 들을 앞으로 하고 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어느날 심한 상처를 입은 노루 한 마리를 발견하고는 가엾게 여겨 정성껏 치료한 후 산으로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돌아가지 않아 결국 노루 우리를 만들어 주어 기르게 되었는데, 또 다른 노루들이 찾아 들어와 함께 살게 되면서 십여 마리가 되었고, 농부의 집은 노루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하루는 농부가 피곤하여 깊은 잠이 들었는데,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금지사(지금의 옥산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진 사찰) 계곡 맑은물에 목욕을 하고 그 중 한 선녀의 탄금(彈琴) 소리에 맞추어 노래하며 노는 것이었다. 새벽닭이 울자 하늘에서 들려오는 탄금 소리와 함께 선녀들이 멀리 홍산(비홍산) 쪽으로 날아가다 되돌아 오더니 농부의 집을 한 바퀴 돈 후 노루위에 곡식을 듬뿍 주고는 다시 멀리 하늘로 올라갔다.

 잠에서 깬 농부는 기이하게 여겨 아내와 함께 꿈 이야기를 하며 선녀가 날아간 산너머를 바라보다가 노루 우리로 돌아와보니, 곡식으로 보였던 선녀가 준 먹이는 곡식이 아닌 풀이었고 노루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사랑하는 아내가 병들어 죽게 되자, 선녀들이 하늘로 올라갔던 산 아래에 아내를 묻고 돌아와 보니 노루들이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농부는 이상히 여기며 아내의 무덤으로 가 보았더니 노루들이 아내무덤 옆에서 놀고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노루들은 눈이오나 비가오나 아내의 무덤에서 온 종일 놀다가 해질 무렵이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던 며칠 후 으슥한 밤, 산에서 아내가 농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산으로 달려가보니, 캄캄한 밤인데도 산은 온통 환한 광채로 둘러쌓여 있고많은 선녀들이 아내를 상좌에 앉히고 금(琴)을 타면서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농부는 기쁜 마음에 아내를 부르며 뛰어갔으나 선녀들이 급히 아내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고, 노루들은 뛰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아내는 농부를 불렸으나 가까이 가면 아내가 하늘로 사라질까 두려워 농부는 다만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슬하에 자식 하나 없는 농부는 노루를 기르는 일과 선녀들과 함께 놀다 하늘로 올라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았다. 후인들은  농부가 바라보던 산을 선녀가 나타나는 산이라하여 옥녀(玉女; 마음과 몸이 옥같이 깨끗한 여자)봉이라 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불리운다.

  * 참고문헌; 부여군지  *구전; 옥산면 홍연리 이종학 (현장 정상 표지석 발췌)

 

         

2.산행길 여정 

 

     @ 출발 및 도착 지점 ; 미산면 옥현리 624 (시내버스 종점)

     @ 산행 들머리 및 난머리 ; 미산면 옥현리 766 (밤나무 단지)

 

     @ 3월 20일 12;30 종점 출발 ▶ 12;37 밤나무 단지 들머리 ▶ 12;43 임도(직상) ▶ 12;55 능선 등산로 합류(좌) ▶ 13;00 용연 분기점(직) ▶ 13;03 옥진정(직) ▶ 13;10 임도 분기점(직) ▶ 13;20 옹달샘 분기점(직) ▶ 13;25 옥녀봉 정상(해발 367.9m, 유턴) ▶ 13;37 임도 분기점(좌) ▶ 14;00 원점 회귀

         

 

  @ 마을에서 바라본 옥녀봉

   @ 들머리 밤나무 단지 

  @ 능선 등산로

  @ 등산로 옆에 핀 진달래

   @ 중턱에서 만난 옥진정 정자

   @ 옥녀봉 정상에 설치된 옥녀정

   @ 옥녀봉에 설치된 기념비

   @ 옥녀봉의 유래비

   @ 옥녀봉에서 바라본 부여 땅(옥산 저수지와 벌판)

   @ 옥녀봉에서 바라본 강경 땅(멀리 강경을 지나는 금강 줄기가 보인다.)

   @ 하산길로 택한 임도 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