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

다듬이 연가 (戀歌)

푸른나귀 2020. 4. 13. 18:31

 

제목: 다듬이 연가

    

 

    

 

일제의 수탈을 피해

늦은목 고개를 넘어올 적에

할아버지 지게에 보름달과 함께 얽매어 옮겨졌다.

 

할머니는 장항선 완행열차에

이불 보따리를 얹을 때에도

그것이 귀물인 양 들치어 메고 서울로 향하였다.

 

산동네 쪽방 신세 이곳저곳

옮겨 다닐 적에도

엄니는 신주 단지 모시듯 옮기었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내 집이 생기던 날

어쩌지 못해 한동안 옥상 귀퉁이에 팽개친 채로

비를 맞으며, 눈을 맞으며

쳐다볼 일이 없었는데

 

고향으로 회귀를 결심하던 날

또각또각

다듬이 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이제는 손주 며느리가 자리잡아준

정원에서 달빛 받으며

도란도란

할머니와 엄니의 손놀림이 춤을 춘다.

 

늦은목 고개 마루엔

그 방망이 소리를 기억하는

벼락 맞아 일그러진 신목(神木)이 있다.

 

 

* 늦은목 고개-보령시 청라면 소양리와 부여 외산면 지선리를 잇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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